대통령 똥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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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정동배
- 작성일
- 2026년 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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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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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똥 Version 1.9.9.1 관점을 조금 돌려 왜곡되지 않는 역사로 보면 5,000년 역사에서 김유신만 한 인물은 없어. 김유신과 같은 선에 계백이나 연개소문이 있는데 좀 엄밀히 보면 이 둘을 합쳐봐야 김유신하고는 비교 자체가 안 돼. 김유신은 유비와 관우를 합친 것이라면 계백과 연개소문은 합쳐서 장비 정도에 해당하는 거야. 당시 신라는 내분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김유신이라는 훌륭한 장군을 둔 것이 결정적이었지. 김유신은 무리하게 전쟁에서 싸우기 보다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장수였지. 조선을 좋게 보는 사람은 많지 않아. 나도 그중의 1명이지. 하지만 또 한편으로 보면 동시대에 하나의 나라가 500년씩 이어져 온 나라도 많지 않아. 물론 여기는 여러 해석이 있겠지만 장점을 놓고 보면 동시대의 많은 강대국들은 100년을 못 간 곳이 대부분이야. 그런데 조선은 500년이라는 긴 역사를 이었지. 결론적으로 보면 지정학적인 위치가 이를 가능하게 했다고도 볼 수도 있고 내부적으로 보면 많은 사화나 옥사의 거침 없는 숙청을 통해 나라를 유지했다고 볼 수 있어. 난 역사 공부를 잘하지 못했지만 조선 500년 동안 정치적으로 백성을 수천 명씩 학살한 것은 거의 들어본 적이 없어. 동학 농민 운동의 경우도 이유야 있겠지만 농민들이 먼저 들고 일어나서 이것을 정리한 거야. 그 외에 여러 난의 경우도 백성들이 먼저 일어나서 정리를 하면서 발생한 살상이라고 보는 거지. 근데 지금은 정치인도 아니고 호남 출신 박사 몇 명 지키려고 수천 명의 고등학생을 살상 했어. 그 역겹다는 조선도 사화나 옥사를 통해 정승이나 판서들을 치면서 나라를 안정화시켜 나갔어. 근데 지금 대한민국에서 살해된 사람들은 지가 왜 죽었는지도 모르고, 죽인 사람들도 기껏 돈 몇푼 받으려고 사람을 쉽게 죽여 버리고, 국가는 호남 출신 박사 몇 명 지키겠다는 논리 같은데 이게 말이 되나? 조선이나 고려의 역사에 이런 경우도 있나? 이 일을 유심히 보면 히틀러나 김일성도 이 새끼들 앞에 서면 똥오줌 질질 싸며 벌벌 떤다니까. 사화나 옥사로 많은 사람을 숙청했다는 것은 다른 말로 내란을 정리한 거지. 결국 조선이 500년을 이어 온 것은 인위적, 자의적, 타의적이었던 내란 정리를 깔끔하게 했다는 거야. 내란을 정리 한다는 것은 권세가나 권력가를 정리하는 것인데 이 썩은 권력을 정리하지 못하면 수십, 수백 배의 국민이 죽는 거야. 지금 대한민국은 국민이 수백 명씩 죽어 나가도 결정을 할 수 있는 권력자가 단 1명도 없어. 피에 굶주린 도살자들이 수십 명, 수백 명씩 죽이고 있어도 정치인들은 모두 일련의 일들이 지들의 기쁨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이런 자들을 정리하는 것은 숙청이라는 용어도 아까우니 그냥 청소를 하자는 거지. 사화나 옥사만 놓고 보면 나라가 왜 저러냐고 볼 수 있으나 백성이라는 것을 놓고 보면 그 사화를 정리함으로써 백성을 살린 거지. 같은 사건을 놓고 보면 노무현이 임기 5년 당시에 학교에 있는 노조 혹은 운동권 일부를 정리해 버렸으면 모든 것이 끝날 일이었어. 그런데 노무현이 이를 안 하는 바람에 돈에 눈이 먼 많은 준권력자들의 욕심이 이렇게 사고를 친 거야. 기껏해야 대략 2~30명 감옥에 잠깐 보내서 나랏돈으로 1인당 월 200여 만원씩 투자해서 먹여 살리다가 내보내면 되는 거야? 특사 등으로 빨리 내보내 버릴 수도 있지. 지금 대한민국 권력은 이 쉬운 일도 안 하면서 지들 봉급 인상과 권력 대물림만 고민을 하지. 그래서 노무현도 죽고, 노회찬도 죽고, 생때 같은 고등학생들을 포함해서 수천 명이 죽어버린 거야. 노무현도 억울하겠지만 또 한편으로 보면 노무현의 무능이 이런 일을 가져온 것도 사실이야. 그러니 앞으로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말을 지나치게 잘하는 놈은 믿으면 안 돼. 말을 잘하는 대통령 후보는 사기꾼이라고 보면 돼. 노무현 정도면 세 치 혀로 젊은이들만 골라 죽이는 도살자나 대량학살자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지. 풍문에 의하면 히틀러도 말을 잘했다고는 하지. 노무현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국민 1명씩 죽어 나간 거야. 무식한 국민들은 이를 보는 눈이 없어서 아직도 방송을 보고 웃기만 하거나 이런 놈들을 지지 한다며 손을 흔들고 난리야. 대통령은 국민의 목숨을 책임지는 사람이야. 임진년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왜란을 일으켰어. 역사 교육이 아주 잘못됐다는 것을 하나 더 지적하면 임진왜란을 보는 시각이 암기 중심이라는 거야. 그럼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답이라고 가르쳐 줬는데도 이 답을 적지 못한 배의 눈에는 이것이 어떻게 보이는지 한번 알아 보자! 만약 배가 히데요시였다면 어떤 전략을 세웠을까? 어차피 일본에서 조선으로 진군을 하려면 배를 이용해야 해. 내가 만약 히데요시였다면 세키부네는 크지 않고 빠르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서 일본에서 서해를 통해 바로 한강의 마포나루에 상륙을 하면 쉽게 경복궁을 점령할 수 있다는 거지. 일본은 땅이 대한민국 몇 배나 될 정도로 커고 무엇보다 바다의 길이 **도에서 마포나루까지 오는 것의 수십 배나 되는 바닷길을 가지고 있지. 솔직히 서해 바다는 한국 입장에서 바다지 일본 입장에서 서해를 지나는 것은 뱃놀이 비슷해. 이를 잘 알면서 배를 타고 바로 마포나루로 가지 않은 이유가 뭘까? 이런 걸 토론하고 고민시키며 해결책을 배우는 게 교육이야. 난 20대 초반부터 이 부분 생각을 많이 했어. 어차피 알아도 방심 할 것이 뻔한 조선 조정을 치기 위한 전쟁을 일으킨다면 마포나루에 수십만 일본군이 맥아더 장군처럼 상륙해서 바로 경복궁으로 처들어가면 사실 몇 시간 안 걸려서 선조는 항복 할 수밖에 없어. 그런데 왜 부산에 상륙을 했을까? 그리고 왜 이런 교육을 하지 않을까? 임진왜란에서 또 하나 궁금한 것은 전쟁을 일으키면 가장 기본이 군량미를 확보하는 거야.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에서 군량미를 들고 뛰어 다니면서 전쟁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지. 그러면 일본에서 조선을 칠 때 상식적으로 군량미를 확보하려면 제일 먼저 어디를 쳐야 할까? 속된 말로 개나 소나 전략을 짜더라도 호남을 치는 것이 군량비를 확보하는 길이고 또한 장기, 단기로 가더라도 전쟁을 유리하게 끌고 갈 수가 있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3군으로 나누어서 조선을 침략했어. 그런데 재미난 것은 삼군이 전부 영남을 치고 서울로 진군을 했다는 거야. 당시 고니시는 조선의 지리에 밝았고 생각이 있는 사람이 있었단 말이지. 물론 히데요시가 성질이 좀 더러워서 앞에서 함부로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군사를 움직일 때는 기본적으로 전략을 짠다는 거야. 어쩜 히데요시를 개똥으로 연출한 영화나 드라마 감독도 지능적인 친일파라고 보면 되지. 부산에 내려서 도보로 서울까지 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지. 무엇보다 영남을 통해 충청도나 강원도를 거쳐 서울로 올라가는 것은 대부분 산악 지역이라서 매우 힘든 길이야. 수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그 험악한 산길로 해서 왕을 잡겠다고 서울로 가는 것이 참 웃기지 않나? 호남 쪽을 치고 서울로 올라가면 대부분 평지이기 때문에 군사를 움직이기도 쉽고 식량 확보도 쉬운데 왜 그 쉬운 길을 놔두고 히데요시가 조선을 먹기 위해 갈 수 있는 가장 힘든 길을 선택 했냐는 거지. 그것도 군을 나누어 조선을 치고 올라 가는데 삼군이 모두 험난한 산악 지역인 영남을 치고 충청이나 영동으로 해서 서울로 올라갔다는 거지. 가장 무식하게 잘 싸울 것 같은 가토가 진군한 길을 보면 조선을 치기 위해 처들어 온 건지 똥개 훈련을 시키려고 진군을 했는지를 모르겠어? 전쟁을 하면 병사들은 뛰어가야 되니 호남에 있는 군량미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왜 영남 지역을 3군이 쓸고 갔냐는 거지. 일본은 3군을 나누어 영남을 치고 올라 갔는데 임진왜란의 영웅은 호남을 지킨 이순신이라는 것도 참으로 신기하지. 일본군 정예병 3군 전군이 영남으로 올라 갔는데 호남에서는 도데체 누구하고 싸웠는지 모르겠어. 물론, 이순신은 훌륭한 사람이고 내가 존경 하지만 역사를 암기 중심이 아닌 다른 눈으로 한번 보자는 거야. 조선이 무너진 결정적인 이유는 신립이 탄금대에서 패전했기 때문이야. 신립은 나름 훌륭한 장군이지만 한 번의 큰 실수로 정예병을 궤멸 시켰지. 자살했다는 소리를 들으면 차마 욕도 못하겠어. 배는 특이 하게도 탄금대를 여러 번 갔는데 정확한 당시의 상황을 알 수는 없지만 추론하자면 신립이 거만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당시 조선의 조정은 일본을 왜놈이라며 매우 무시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동안 일본이 잔잔한 전투를 하면서 전략 아니면 고의인지는 몰라도 도망을 많이 갔지. 그래서 신립 뿐만 아니라 조선의 장수들도 대부분 왜놈이라며 일본을 무시했던 거야. 이 싸움에서 국회의원들이 김대중의 창과 방패로 싸우는 배를 무시하는 것과 똑같지. 장수는 작은 전투에도 항상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되는 거예요. 그리고 장비 같은 타입의 장수는 위에서 유비나 관우처럼 눌러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돼. 근데 장비 같은 타입이 최고의 결정권자에 오르면 그 조직은 100% 바로 망하는 거야. 지금 운동권은 모두 전투력 최강인 장비 스타일이지. 명령만 내리면 물, 불 안 가리고 뛰어가는 돌격대인데 이런 놈들이 지금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을 하여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거야. 김대중은 이런 돌격대로 생각하고 운동권을 키웠는데 이놈들이 위로 올라 가면서 부처님, 예수님 흉내를 내는 성직자가 되어 버린 거야. 근데 신립은 내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장비 같은 타입도 아니고 약간 관우 비슷한 스타일인데 그만 결정적인 순간에 판단을 잘못한 거지. 앞에서 써 놓은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과 호남은 닮은 점이 있어. 그게 뭐냐 하면 오랫동안 잔잔하게 준비를 한다는 거야. 짧은 나의 역사 지식으로 보면 일본은 대략 1550년경부터 조선 침략을 준비 한 거야. 그래서 남해 바다 등의 잔잔한 국지전에서 전략적으로 백전백패를 한 거지. 이런 조선 조정의 기억이 탄금대에서 신립으로 하여금 궤멸을 하게 한 거야. 어쩌면 고니시는 탄금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는지 몰라. 그래서 거만한 신립을 늪지로 불러서 소총으로 빵빵 쏴버리니 기마병인 신립의 말들이 총을 맞은 놈도 별로 없는데 총소리에 놀라서 그만 희뜩희뜩 뒤집어져 버린 거지. 그러니 일본 입장에서는 별로 어렵지 않게 궤멸을 시킬 수 있었던 거야. 유추하자면 흔히 히데요시를 과격하게 표현하여 즉흥적으로 전쟁을 일으킨 것으로 착각 할 뿐이지 일본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오랫동안 조선을 칠 준비를 했다고 봐야 돼. 그래서 남해 바다를 통해 노략질 비슷하게 일본의 형편없는 전략을 보여준 거야. 여러 척의 배가 왔다가 전부 도망을 가거나 또 많은 사람이 조선군 몇 명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기도 하는 등 지속적으로 일본과의 국지전이 있었으나 모두 조선의 승리로 끝내버린 거지. 아마 이런 이유가 신립을 자만하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야. 그리고 신립의 만여 명 정예병이 탄금대에서 패전을 했다고 하더라도 일본군이 한양으로 진군을 할 때 오합지졸이라곤 하나 지방 수만의 병사나 의병이 호남을 중심으로 모여 후방을 공격하기로 되어 있었어. 근데 호남으로 들어간 그 많은 조선의 병사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는 거야. 이도 참으로 아이러니지. 왜 역사 교과서에서는 이런 부분을 바로 가르치지 않는지 모르겠어. 그리고 6.25 전쟁이 일어났는데 이도 마찬가지야. 상식적으로 당시 후방으로 피난을 가서 숨거나 살기에는 부산 쪽보다는 호남 쪽이 좋아. 왜냐하면, 작은 섬들이 많기 때문에 각각의 섬에 숨어 들어가면 쉽게 적과 게릴라전 등으로 교전을 할 수 있지. 근데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 낙동강이 최후의 방어선이 된 거야. 결국, 한반도 큰 전쟁에서는 항상 부산이 그 기점이 된 거야. 임진왜란도 부산에서 출발을 했고, 6.25 전쟁도 부산에서 마지막 방어선을 지켰지. 그런데 지금 국가보안법이 호남보안법으로 둔갑을 하고 있어. 호남은 나라의 큰 위기에서 그 방어선을 구축한 적이 없어. 내가 이 사건을 22년째 풀어 가는데 국가보안법이 대부분 호남, 김대중 중심으로 되어 있다는 거야. 난 호남, 김대중 중심으로 가는 국가보안법을 따라간 적이 거의 없어. 특히, 문재인이 행동하지 않으면서부터는 거의 호남, 김대중 쪽의 기준이 맞지 않거나 계속 뒷북만 쳤지. 그리고 이런 늬앙스에 대해 내가 계속 거부를 하며 이건 아니라고 반응을 했어. 그런데도 마지막 끝까지 계속 그쪽으로 몰고 가는 거지. 나한테서 도대체 뭘 원하는 거야? 나라의 큰 환란 두 번이나 마지막 방어선이며 전쟁이 시작이기도 한 부산도 가만히 있는 국가보안법을 왜 호남보안법으로 바꾸어서 사람을 이렇게 힘들게 하고 혼란스럽게 하는지 모르겠어. 2025년 6월 25일, 2025년 8월 15일, 2026년 1월, 2월, 3월 지속적인 황금 같은 기회를 모두 고의로 잡지 않았어. 놓친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회피한 것이지. 이것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전략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 하면 내 입장에서는 책임을 물을 수 밖에 없는 거야. 진퇴양난의 입장에 서 있는 내가 뭘 어떻게 해야 되겠어. 그러니 앞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다수당 스스로 선택한 일임을 알아야 돼. 지금부터는 내가 대한민국 경찰에 주는 팁이야. 앞에서 내가 Pattern을 읽어라고 했는데 이 Pattern 읽는 법을 말하고 싶어. 수사권이 내려간 것은 패턴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는 거야. 정책이나 전략을 짜지 못하는데 어떻게 수사를 할 수 있겠어? 현재 수사권은 경찰에 내려가 있으나 정책이나 전략을 짜보지 않은 사람들한테 수사권이 내려간다는 자체가 모순이야. 경찰들도 이를 알고 수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키워야 해. 이것도 김대중이 세상에 말하고 싶었던 것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2006년경 성동경찰서에 조사를 받으러 갔어. 조사 받는 중간에 형사과장과 별 내용은 없는 상담을 했으나 이분도 그렇게 편해 보이지 않는 자세로 계속 반복되는 말을 하는 것이 내 사건을 담당한 경찰 팀장이 아주 훌륭한 사람으로 얼마 전에 경찰대학을 수석 졸업한 인재라는 거야. 경찰대학을 수석 졸업한 경찰 팀장과 내가 마주보고 앉아 조사를 받았는데 그 조사 장면 자체가 김대중의 전략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난 막연히 억울하다는 이야기를 했고 그 경찰팀장은 사람이 외형상은 똘망똘망하고 아주 믿음이 갔지. 그렇게 관례대로 조사를 받았어. 이 상황을 좀 다르게 보면 그 담당 형사 팀장은 얼마 전에 경찰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사람이고 그 앞에 앉아 있는 난 서울대학에서 수석을 한 번 했으니 김대중의 눈에는 경찰대학과 서울대학 수석 둘이 앉아서 조사를 받고 있는 거야. 재미난 사실은 박 박사가 그 경찰한테 학교 등기부 등본을 증거로 꼭 제출을 하라고 했지. 박 박사가 계속 강조를 하며 학교 등기부 등본을 꼭 첨부하라고 한 것은 같은 사건이 각하 사유이니 조사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지. 학교가 아니니 다툼이 필요 없는 증거 자료를 앞에 두고 경찰대학 수석 졸업한 팀장과 내가 서로 다투고 있었던 거야. 돌이켜 보면, 경찰은 가장 먼저 소의 성립을 따진 후에 조사를 해야 됐던 거야. 당시 형사 과장과 박 박사 등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이 사건 조사 과정을 김대중, 노무현이 지켜보고 있었던 거야. 당시 이 조사 과정을 놓고 사람들이 참 재미난 사건이라거나, 아주 높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다거나, 많은 사람이 보고 있다는 소리를 종종 했어. 이 말은 웬만한 언론 단체 및 국내에서 방귀 좀 끼는 사람들은 전부 지켜보고 있었다는 소리지. 외형상 보면 경찰대학 수석한 사람과 서울대학 수석한 사람이 존재하지도 않는 학교를 두고 조사를 하고 있었던 거야. 일종의 해학으로 볼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 보면 경찰대학을 수석 졸업한 사람이 등기부 등본 해석을 못한 것이 문제일까? 아니면 서울대학에서 수석을 한 번 했다는 사람이 등기부등본을 모르는 것이 문제일까? 아니면 국무총리를 지낸 사람이 등기부 등본을 모르는 것이 문제일까? 아니면 서울대학이나 하버드, 동경대, 북경대 등의 명문대 박사들이 등기부등본을 모르는 것이 문제일까? 22년이 지났는데 이를 지켜 보고만 있던 김대중, 노무현만 잘한 것일까? 그리고 재미난 사건이라는 둥, 많은 사람이 지켜본다는 둥 하면서 여기까지 끌고 온 그 사람들은 또 무엇일까? 처음 등기부 등본을 만든 사람이나, 사건 조사 당시 주변에서 이 사건을 두고 놀리던 사람들이나 다들 학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는 소리지. 추론이지만 당시 이렇게 놀리던 사람들이 학교에서 돈을 뽑아 먹거나 내가 컨트롤 못 하는 돈을 노리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너무 끝으로 와버리니 당시에 놀리고 있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모두 진짜 나쁜 사람이 되어 버린 거야. 내가 환경대학원에서 수석을 한 것은 사실이나 이 학교의 등기부 등본을 내 설명 없이 학교가 아니라고 해석을 할 수 있는 서울대학 출신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하는 거야. 그러니 이 등기부 등본은 김대중이 직접 만들었을 수도 있지. 상고 출신 1명이 만든 등기부 등본을 그 많은 서울대학, 경찰대학 출신들이 다 몰랐다는 것도 잘한 것은 아니지? 당시에 내가 조사를 받고 나오면 여러 사람들이 막 웃고, 즐기고, 나중에 재미날 것이라는 둥, 진짜 골 때린다는 둥 말들이 많았어. 그럼 박 박사, 성동경찰서 형사과장 등 이런 사람들은 학교가 아니라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는 소리잖아. 그럼 이것을 방관한 사람들은 잘한 것일까? 아니면 이것을 방관이 아니라 범죄로 볼 것인가? 이 사람들의 법률해석 능력이 뛰어나서 학교가 아니라는 것을 안 것이 아니고 지들이 학교가 아니게 만들어 놨으니 아는 거야.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면 김대중도 똑 같이 모른다는 거지. 당시 경찰대학 수석한 담당 경찰은 몇년 전에 경찰 간부들이 시위를 할 때 그중 한 사람에 포함이 되는지 아니면 지금쯤 경찰청장이 되어 있는지 모르겠으나 이 사람은 22년간 대한민국 경찰로 승승장구하며 편안하고 폼나는 생활을 했던 것은 사실이지. 대한민국 경찰이 법을 지키거나 대통령령을 따른다면 배의 고소는 모두 인용을 해야 맞고 법리 해석을 했다면 각하를 해야 하는 것이 맞는데 성동경찰서나 강남경찰서, 분당경찰서, 사천경찰서, 검찰 등은 모두 기각을 했지. 대한민국 경찰과 검찰이 김대중과 정동배를 존나 무시한 거지. 경찰도 결자해지 하라는 뜻인데 지금 수사권까지 쥐고도 저러고 있지. 재미난 사실은 수사관이 나를 조사하면서 기각, 각하, 인용이 어쩌고 이런 소리도 했어. 그럼 결국 지도 존나 모르면서 이 새끼가 마치 내 앞에서 주름을 잡고 있었다는 소리잖아. 모든 경찰이 다 잘못한 건 아니고 여기 용산경찰서, 서부지검은 아주 적법하게 잘했지. 대한민국에 이런 데도 한 곳 정도는 있어야 되지 않겠어? 이 정도 규모의 사건이면 용산경찰서 경찰들은 전원 1계급 특진을 시켜야 돼. 암튼, 이 모든 것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단을 하면 또 다 맞고 그래. 지금 돌이켜 보면 김대중과 많은 호남 사람들은 이 모든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었으면서 세상에 대해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었던 거야. 1861년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완성했어. 5년 후인 1866년 김정호가 사망하고 병인양요가 일어났지. 5년 후인 1871년 신미양요가 일어나고, 5년 후인 1876년 강화도 조약이 체결됐지. 정책을 세우거나 전략, 계획을 짜는 것은 앞으로 할 일을 차근차근 정리하고 준비하는 과정이에요. 목표를 명확히 하고 필요한 단계들을 생각하는 거죠. 다시 말해 규칙을 찾는 건데 이런 것을 Pattern이라고 하는 거지. 1861년부터 동일한 패턴을 찾는다면 5년 주기로 일어났다는 거야. 5년 주기로 유사한 큰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은 이미 계획을 했다는 것이지. 그럼 이를 통해 유추 할 수 있는 것은 1850년경부터 일본이 조선을 먹기 위한 계획을 실행 한 것이지. 1850년부터 김정호가 여러 자료를 수집하거나 직접 조사 등으로 지도를 만들려면 상당한 비용이 들었겠지. 그럼 이 비용을 누가 지불을 했을까? 1850년 이후 이 지도를 통해 사실상 일본이 가장 큰 수혜자가 됐지. 지난 22년간 경험으로 비추어 봤을 때 유사한 Pattern을 분석해 보면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들어가는 비용은 일본의 지시로 호남을 통해 지불 됐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지. 그리고 이런 것을 내가 안다는 것은 많은 역사학자들이 다들 알고 있다는 소리야. 어떻게 보면 한일 합방의 가장 첫 단추는 김정호가 시작을 했는데 왜 김정호나 대동여지도가 훌륭한 것으로 둔갑을 해 버렸냐는 거지. 앞에서도 강조했지만 난 도면을 그릴 수 있는 국가기술자격증을 가지고 있어. 그래서 보편적으로 도면을 이해하는 사람 중의 1명이라고 볼 수 있는데 도면은 전략이고, 기획이고, 정책이고 그런 거야. 언젠가 학교에 있는데 윤 박사가 오더니 김옥균을 엄청나게 칭찬을 하더라고. 근데 난 김옥균에 대해서 잘 모르지. 그래서 그런가 보다 했던 거야. 내가 유추한 패턴에 따라 일제 강점기를 끌어온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추론해 보면 김옥균과 김정호를 영웅으로 만들려는 역사학자들의 배경이라고 볼 수 있지. 김정호를 영화로 만들거나 하는 등 이런 제작자들이나 이런 사람들과 배후가 진짜 역적들이라고 볼 수 있는데 대한민국은 이런 것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 다들 사실을 즉시하려는 노력들은 안 하고 똘똘 뭉쳐다니며 남의 피를 빨아 먹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는 거야? 그래서 혈맹을 맺어 그 많은 피를 흘리게 된 거야. 여러 역사학자들이 부인을 하더라도 나같이 도면을 이해하는 사람은 100% 김정호가 일본을 위해 도면을 그렸다고 판단이 되지. 김정호가 일본을 위해 도면을 그려서 한 부를 일본에 주고 알리바이를 위해 왕에게도 보고를 했다면 과연 역사 기록에, ''''일본에도 몰래 주었다.''''라며 남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역사 학자가 존재한다는 자체가 이상한 것이지. 너 같으면 그렇게 하겠냐고. 역사를 기록에서만 찾으니 이런 게 안 보이는 거야. 흥선대원군이 대동여지도에 대해 화를 냈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증명할 것이 없다고 해서 이를 부정하는 역사학자들은 김정호가 백두산에 몇 번을 올라 갔니 헛소리를 하면서 진짜 친일파 김정호를 영웅으로 만들어 버렸단 말이야. 근데 내가 보는 이 시점으로 보면 흥선대원군이 화를 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거야. 그러면 친일파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이완용이 아니라 김정호가 되는 것이 맞지. 이완용은 가서 서명을 했건 날인을 했건 고종의 허락 없이 갔다고 볼 수는 없어. 만약 고종의 허락 없이 이완용이 독단적으로 행동했으면 그 날인은 효력이 없지. 한국이 해방을 한 것이 대한민국의 자주 독립이나 그 문서의 위조로 해방을 했으면 명분이 한국에 있으나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이완용의 날인은 고종의 날인이라고 봐야 돼. 이완용이 애국자로서 훌륭한 사람은 아니나 이미 벌써 몇 십 년 전부터 준비되어 온 과정에 이완용이 서 있었던 거지. 같은 사건으로 비추어 봤을 때 마지막에 서 있던 문형배의 책임이냐? 문재인의 책임이냐? 라고 따질 수 있으나 노무현의 책임 역시 무시하지 못한다는 거야. 문형배나 문재인이 이완용이라면 노무현은 김정호에 가깝다고 볼 수 있지. 한국의 많은 역사학자들 중에는 사실상 진짜 친일파면서 마치 지만 애국자인 것 처럼 둔갑을 해서 대한민국의 기록이 어찌하다며 조작한 역사 왜곡으로 지금도 보이지 않는 친일파 행위를 하고 있는 거지. 그러니 국민들은 방송에서 떠드는 친일파니 뭐니 하는 소리에 현혹 되지마! 이는 정치인들도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이야. 그러면서 그들의 표를 의식해서 거짓말을 하거나 애국심을 호소하는 거야. 그러니 친일파라고 욕하는 놈들이 친일파고, 공산당이라는 이런 놈들이 사회주의자라는 소리야. 역사는 반드시 기록에만 의존해서 기록하거나 가르쳐서는 안 돼. 그럼 역사는 진짜 나쁜 놈들의 의도대로 쓰여지는 거야. 지가 쓰는 자신의 일기장이나 자서전도 왜곡 되고 조작이 되는 거야. 그런데 이것을 기록만으로 강조하는 놈들은 대부분 대가리가 나쁘거나 빨갱이 새끼들이야. 기록은 참고용이라고 보는 것이 맞지. 그리고 기록을 참고해서 분석을 통해 예측하거나 가능성을 잡아주는 그런 사람이 머리를 쓰는 사람이야. 근데 대한민국은 머리를 쓰는 사람들은 다들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노무현 같은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들어 대고 설치지. 대한민국에서 알만한 사람들은 다들 보면 조용해. 같은 사건의 경우도 기록에만 의존하면 사건을 풀어갈 수가 없어. 기록을 근거로 유추를 해서 사건을 풀어가면 다른 기록이나 다른 증거들이 사실을 풀어 준단 말이야. 그래야 내가 모르는 사실을 알게 되는 거지. 근데 지금 대한민국 역사학자들의 주장은 진짜 무식한 놈들이나 하는 주장이야. 조선왕조실록을 보고도 왕이 사초에 기록하지 말라 했다는 내용까지 적어놨다고 해서 실록이 신빙성이 있다고 하는데 이것도 머리가 나쁘고 단순해서 그런 거야. 실록에 이런 기록이 있는 것은 그만큼 기록이 많이 왜곡 됐고 엉터리로 남겨졌기 때문에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런 기록을 남기는 거야. 그런 기록이 있는 부분은 그 전 몇십 년전이나 이후의 기록에서 분명히 조작된 것이 있다는 뜻이지. 세상은 영악한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판단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들러리야. 그러니 들러리들이 목소리를 못 내게 해야 돼. 대표적인 사람이 노무현, 문재인, 쿠데타 수괴야. 아마도 진짜 지능적인 친일파나 공산당들이 왜곡된 역사학자들을 많이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 왜냐하면, 내 사건과 Pattern이 유사하기 때문에 이를 유추하면 일본 사람이 1850년부터 조선에 들어 와서 지도를 그리기 시작하면 여러 의심을 받거나 문제가 많았겠지만 조선 사람을 통해 조선의 지도를 그리면 그래도 비교적 문제가 덜 되지. 아무튼, 그렇게 해서 1861년에 대동여지도가 완성이 된 거야. 지도라는 것은 한편으론 측량과도 맞물려 있는 거야. 측량을 통해서 보다 정확한 지도를 그릴 수가 있지.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1861년부터 5년 주기로 유사한 큰 사건이 계속 일어나다가 1875년 운요호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것은 측량을 하다가 일어난 거야. 역사학자나 인문학자는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나 같은 기술자나 공학자들은 이렇게 밖에 해석이 안 되는 거야. 역사를 연구하고 기록하는 것은 역사학자들이 해도 교육을 위한 역사는 역사학자들이 하면 안 돼. 이런 놈들은 생산적인 것은 없고 국가 세금을 빼돌려서 지 새끼한테는 지가 만든 역사를 안 가르친다고. 그래서 다 미국이나 뉴질랜드, 캐나다로 지 자식들은 유학을 보내는 거야. 이런 역사는 기록으로만 찾으면 일본에서 측량을 한 일이기 때문에 조선 조정에서는 알 수가 없지. 하지만 김정호 대동여지도의 정밀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 하기 위한 측량이었다면 말이 되지. 그리고 다음 해인 1876년 강화도 조약이 체결된 거야.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고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났는데 임오군란은 일본의 전략에 포함되는지 유추하기 어려우니 생뚱맞는 조선의 한 사건이라 볼 수도 있어. 흥선대원군이 엄청나게 똑똑한 사람이라면 이는 대원군의 작품으로도 볼 수 있지. 그리고 갑신정변의 경우는 1884년에 일어났지만 3일 천하로 끝날 줄을 몰랐던 거야. 그래서 그 정변이 1885년에 끝날 것을 예상하고 일본의 사주를 받은 사람들이 정변을 일으켰다고 볼 수 있어. 왜냐하면, 일본의 계획대로라면 갑신정변이 1885년에 끝났어야 되는 거야. 1861년부터 1880년대까지는 일본, 미국, 영국, 프랑스가 같은 편이었다고 볼 수 있어. 1890년대 접어 들면서 일본이 5년 주기를 1년씩 앞당기며 독자 노선을 갔다고 봐야지. 그래서 이들은 기록을 남기지 않고 함께 모사하여 서로 돌아가면서 5년 주기별로 조선을 찝쩍거린 거지. 그리고 조선과 같은 편이었다고 할 수 있는 중국과 러시아가 일본과 전면전을 한다면 일본은 승산이 없어. 그래서 영국 등이 청나라와 러시아를 괴롭히는 사이 일본이 이들과 국지전으로 승리를 한 거야. 일본이 청나라, 러시아와 전쟁을 한 것은 영국, 미국, 프랑스 등 유럽과 합의하고 조선을 먹을 테니 청나라와 러시아는 찌그러져 있어라는 싸움으로 보면 되지. 그래서 1894년 청나라와의 국지전에서 승리하여 다음 해인 1895년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1904년 러시아와의 국지전에서 승리하여 다음 해에 1905년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한 거야. 큰 그림으로 보면 조선의 편이라고 할 수 있는 청나라와 러시아가 전쟁에서 일본에게 져버린 거지. 결과적으로 1910년 한일합방을 할 수밖에 없는 거야. 1885년에 끝나야 될 갑신정변이 3일 천하로 끝나자 10년 뒤인 1895년에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10년 뒤인 1905년에 을사조약이 체결된 거야.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갑신정변 이후부터 그 주기가 10년인데 이는 전쟁을 대비한 거지. 한반도의 역사 기록에는 없으나 일본의 역사 기록 어딘가에는 1890년과 1900년에 전쟁 준비를 시작했다고 보면 전체적으로 5년 주기가 되는 거야. 아무튼 60년 장기 전략으로 조선을 먹기 위한 일본은 1과 6으로 끝나는 5년 주기에서 갑신정변을 기점으로 0과 5로 끝나는 5년 주기로 변화를 주어 독자적으로 조선을 먹겠다는 작전인 거지. 조선에서 큰 사건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894년에 청일전쟁이 일어나고 을사조약 체결되기 1년 전인 1904년에 러일전쟁이 일어났다는 거야. 즉 전쟁을 위해 각 4년씩 준비를 한 거지. 이 두 사건은 10년 주기로 일어났으며 일본이 전쟁을 하면 항상 1년후 조선에서는 큰 사건이 일어났다는 거지. 그러니 일본이 청나라나 러시아와의 전쟁에서는 반드시 이기게 되어 있었던 거야.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은 이런 사실을 뻔히 알면서 그들의 기사나 보도 등을 통해 일본이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 마치 놀라운 일이라면서 대대적으로 보도를 한 거지. 사람들이 역사를 바로 알려면 이런 보도를 믿으면 안 되는 거야. 그래서 대한민국은 기자 출신들이 정계 진출하는 것을 막아야 돼. 기자들의 기사라는 것은 언론사의 이익을 위하거나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권력을 잡고자 하는 정당 혹은 집단의 이익을 대변할 확률이 높다는 거지. 아무튼 언론은 국내나 국제나 요즘이나 옛날이나 믿을 게 못 돼. 그렇게 1910년에 병술국치가 된 거야. 이를 전체적으로 정리를 해 보면, 1861년부터 1880년대까지 일본, 미국, 영국, 프랑스가 같은 편이었다고 볼 수 있지. 그래서 이들이 조선을 5년 주기별로 계속 찝쩍, 찝쩍한 거지. 일본은 청나라와 국지전을 하고 다음 해에 명성황후를 시위하고 러시아와 국지전을 하고 다음 해에 외교권을 박탈한 거야. 큰 그림으로 볼 때 조선의 편이 될 수 있는 청나라, 러시아가 전쟁에서 일본에 져버린 거지. 그럼 조선은 1910년 한일합방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거야. 만약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미국과 싸우지 않고 러시아나 중국과 싸워서 패전했으면 아마도 한반도는 여전히 일본의 땅일 가능성이 높아. 미국이 화가 나서 니 것이 아닌 것은 모두 토해 내라고 해서 한반도가 독립을 한 거야. 만약 중국이나 러시아와 싸워서 일본이 졌으면 한반도를 제외한 나머지를 토해내라라고 했을 가능성이 꽤 높지. 다시 말해, 당시에 러시아와 중국이 조선의 편이 될 수 있었는지 몰라도 미국이 아니었으면 한반도는 여전히 일본의 땅일 수도 있어. 그러면 지금 쯤 내 이름은 나까무라가 되고 이 글을 읽으면서 친일파라고 외치며 마치 애국자인 척 흉내 내는 네놈 이름도 나까무라야. 그러니 국제관계는 단편적으로 보면 절대로 안 되는 거야. 처음 몇 차례는 5년 주기로 큰 일을 계속 벌리다가 뒤에는 10년 주기로 전쟁과 함께 일어난 후 마지막에는 다시 5년 주기로 병술국치가 이루어진 거지. 이런 걸 Pattern이라는 것인데 전략, 정책, 기획을 짜면 이 Pattern을 무조건 믿게 되어 있어. 왜냐하면, 그렇게 전략을 짜서 실행이 된 것이기 때문이지. 근데 전술에 능한 경찰, 검사는 대부분 전술 쪽에 가깝기 때문에 이런 것을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측면이 있지. 근데 판사나 정치인들은 대부분 전략이나 정책을 짜기 때문에 이런 Pattern을 읽는 게 쉬워. 이런 Pattern은 내란, 전쟁 등 대부분 큰 범죄인데 경찰이 여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거야. 이제 경찰이 수사권을 가져 있으니 이런 패턴을 읽어 여러 국가 기관과 공조하는 걸 배워야 되는 거야. 역사 책을 기준으로 보지 말고 내가 말하는 걸 기준으로 연도를 쭉 적어 정리를 한번 해보면 내 말을 믿게 될 거야. 역사를 나의 관점인 정책이나 전략으로 보면 이완용은 아무것도 아닌 거지. 일본에서 이런 걸 확인해 줄 일이 없으니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이 패턴이 맞으면 어쩜 진짜 친일파는 김정호와 김옥균일 수 있지. 역사를 기록에만 의존해서 암기 중심으로 배우면 내가 말하는게 잘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어. 하지만 역사를 보는 눈을 나처럼 가지고 보면 갑자기 역적이 영웅이 되기도 하고 영웅이 역적이 되어도 하고 그래. 내 글을 읽으면 홍준표 같은 한국의 관료들은 친일파나 정동배의 괴변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이런 사람은 명문대학을 나오고 고시를 패스해도 정책이나 계획, 전략을 수립하여 실행을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이야. 이들은 전술은 알지만 전략을 모르는 사람이지. 전략을 짜본 사람이라면 내가 말하는 역사를 더 믿게 되어 있어. 그러니 괴변이라는 자들은 무늬만 좋은 그냥 단순 무식한 놈들이야. 일본은 조선을 먹기 위해 60년간 계획을 세우고 차곡차곡 진행을 한 거야. 그런데 이런 걸 아직도 모르면서 암기 중심으로 공부라는 것을 해서 국사 100점 맞았다고 지가 똑똑한 줄 아는 이런 놈들이 나라를 말아 먹는 거예요. 역사 공부는 이렇게 가르치는 거야. 절에 있는 탑이나 도자기 깨진 것, 숟가락 같은 것에 이상한 이름 정해서 학생이 이를 외운다고 해서 그 학생이나 나라의 미래에 무슨 도움이 돼. 그러니 국사 교과서에서 탑 이름이나 도자기 같은 것은 단 한 점도 남겨서 배울 것이 없으니 전부 빼 버려. 이놈의 식민지 근성이 강한 역사학자들아! 역사를 배우는 것은 한국의 것을 배워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는 거야. 이런 중차대한 일을 두고 어디 절에 있는 탑이나 깨진 도자기를 배워서 한국 학생들이 미래의 국제 사회에서 무슨 경쟁력을 갖출 수가 있어? 역사 교육에서 한국의 것을 배운다는 것은 이를 통해 국제 경쟁력을 갖추는 거야. 이 도자기가 얼마나 중요한데 그따구 소리를 하냐는 놈은 정신 세계 자체가 식민지 근성이야. 네가 중요하다며 한 개에 1억, 2억, 10억씩 가는 그 도자기 난 전부 깨어서 바닥에 깔아 버릴 수도 있어. 그런 역사 교과서를 쓴 놈의 지 새끼들은 대부분 미국이나 뉴질랜드로 유학을 보낸단 말이야. 캐나다에서 니가 말하는 그 소중한 도자기를 가르치냐? 이렇게 주장을 하는 놈들 중에 지 자식들이 유학을 떠나지 않는 사람들은 다 돈이 없어서 그런 거야. 내가 주장하는 대로 한국의 국사 교과서를 만들면 한국의 역사를 배웠지만 미국, 캐나다, 영국 등과 국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역사 교과서가 되는 거지. 그러니 무슨 이상한 도자기, 탑 같은 것은 애들한테 가르치지 마. 정신병자 새끼들도 아니고 말이야. 중국이나 대만 같은 데 가보면 한국의 절하고 비교가 안 되는 데가 많잖아. 그런데 한국 절에 있는 탑이나 도자기 같은 것 이름을 외워서 한국 학생들이 어떻게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겠어? 아시아에서도 게임이 안 되는 내용을 역사 기록이라며 애들 힘들게 암기 시키는 식으로 가르치지 마란 말이에요. 해방 이후 대한민국 교과서를 개발한 사람들은 똑똑한 사람들이 아니고 말 잘 듣는 사람들이야. 그래서 발전이 없는 거지. 역사 교육에 대해 논하려면 학교 성적이 대략 50점이나 60점 정도 되는 사람이 100점 맞은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거야. 근데 지금은 학교 국사 성적 빵점짜리가 100점 짜리보고 이렇게 나무랄 있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거야. 패턴을 이해하려면 우선 숫자에 대해서 알아야 돼. 난 지난 22년간 동굴 속에 살면서 이 숫자와 표정, 분위기 등 뉘앙스로 세상을 판단했지. 지금 경찰들은 갑자기 수사권을 받았기 때문에 정책이나 전략에 대해선 잘 몰라. 이것을 알아야 큰 범죄를 잡을 것 아냐. 그래서 내가 숫자와 뉘앙스 읽는 것을 말하고 싶어. 우선 숫자는 0부터 9까지 있는데 숫자는 직선이 이루는 각의 수야. 그래서 영은 각이 없고, 일은 각이 하나고, 이는 각이 두개 이런 식으로 해서 구는 각이 아홉 개인 거야. 그래서 손가락의 숫자와 같이 각의 숫자를 0에서 9개까지를 정해 놓은 것이 아라비아 숫자야. 숫자가 만들어질 때는 이렇게 만들어졌지만 만들어지고 나서는 그 숫자에 대한 의미도 만들었지. 보통은 재미로 말들을 하지만 그 의미를 자세히 보면 전 세계 공통이야. 세계 어느 나라에 가도 이 숫자에 대한 의미가 통한다는 거지. 한글은 한국과 북한만 통용되지만 숫자에 대한 의미는 전 세계에 다 통해. 사람들이 살아가는 보편적인 세상은 모든 것이 다 아날로그로 되어 있어. 이것을 요약하고 정리하는 것이 디지털인데 아날로그를 여러 그룹으로 묶어 놓은 것이 문자라고 보면 되고 이 문자를 더욱 디지털화한 것이 숫자라고 보면 되지. 이 숫자를 압축에 압축을 더해 놓은 것이 동양 철학에 있는 음양이라고 보면 돼. 이 음양은 수학에서 이진법이라고 하는데 동양에서는 이 음양을 사용한 것이 몇 천년이 되지. 이는 다른 말로 컴퓨터의 기본 원리는 동양에서 벌써 몇 천 년 전에 사용을 했다고 보는 거야. 동양에서는 컴퓨터의 기본 원리를 몇 천 년 전에 깨우쳤지만 이것을 과학적으로 발전 시키지를 못한 거야. 서양에서는 이것을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그리고 미래 지향적인 관점으로 바라봤기 때문에 컴퓨터를 개발할 수 있었던 거지. 지금 보통 사용하는 많은 정보들은 대부분 이진법에 의해서 다루어지고 있어. 단지 보통 쉽게 체감을 못하는 것 뿐이지. 그럼 십진법에 있는 숫자의 경우는 어떻게 해석이 되냐 하면 쉽게 보면 이렇게 해석이 돼. 일본이 중국에 731부대를 만들었어. 만약 중국이 같은 부대를 만들었으면 831부대가 되는 거야. 숫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부대 명을 그 나라 마음대로 정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국가의 큰 틀을 만드는 것을 알고 이런 숫자를 이해하면 중국이 그런 부대를 만들면 반드시 831부대로 만들게 되어 있어. 이게 숫자가 가지는 의미이기도 하고 숫자의 힘이기도 한거야. 좀 다른 문제일 수도 있으나 같은 맥락으로 풀어 보면 윤미향은 무식해서 그런 거야. 윤미향은 경상도에 행정적 등록을 하고 사는 사람을 충청도나 강원도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똑같은 거야. 조금만 똑똑하다면 세상에는 절대로 절대로 안 되는 게 있어. 그런 면에서 보면 나름 박근혜는 아주 잘한 거야. 봐라! 나 정도의 환경에서 사는 사람도 이렇게 말을 꺼내는 자체가 부담이 되잖아. 막연히 친일파라고 외치는 무식한 놈들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기는 거야. 무식한 운동권 새끼들이 국민을 개똥으로 만들고 있어. 무식한 놈들은 절대로 정치에 나서서는 안 돼. 내가 이 사건을 겪으면서 얼마나 많은 경찰과 검사를 만났겠어? 근데 보편적으로 경찰이나 하급 공무원들의 경우는 무슨 일을 할 때 항상 먼저 알고 있어. 그래서 약간 거만한 태도로 모든 민원이나 사건을 접하지. 그런데 알고 보면 민원의 내용을 아는 게 하나도 없어. 반면, 고위 공무원이나 검사, 변호사들을 만나면 나름 신중하고 알려고 노력하는 태도들이 강해. 변호사 정도 되면 분명히 알 것 같은데도, "글쎄요. 그것 가지고는 알 수 없습니다."라는 말들을 참 많이 해. 그런데 하급 공무원들이나 경찰들을 만나면 이미 다 답이 정해져 있어. 그래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면 그게 의미가 없는 거야. 그런데 하급 공무원들이나 경찰들을 만나면 보편적으로, "글쎄요. 그건 안 된다니까요. 절대로 안 되는 거예요." 이들은 민원인의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아 이해를 못하는 걸 뻔히 아는데도 이런 말들을 많이 해. 특히 판사들은 실질적으로 아는지는 모르겠으나 태도에서 보면 상대방의 말을 들어 주려고 노력하는 것을 쉽게 접할 수가 있어. 같은 사건의 경우도 초등 수사를 성동경찰서에서 가장 자랑하는 경찰대학 수석한 사람이 맡았는데 등기부 등본 해석을 못 해서 이렇게 왔지. 그러니 경찰들은 좀 아는 척 좀 하지 말고 거만한 태도나 뻐기려는 이런 태도를 좀 숨겨. 그리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먼저 하란 말이야. 지금 내가 거의 확신하는 사실만 놓고 보더라도 노무현 대통령 살해범은 당시의 경찰청장일 가능성이 많아. 경찰 여러분이 모시고 있는 가장 높은 사람 중의 1명이 대통령을 살해한 것이지. 지금과 같은 마인드로는 절대로 범인을 못 잡아. 그러니 내가 하는 말을 이해를 하려고 노력해야 사건에 대한 접근을 할 수가 있단 말이야. 지난 22년간 경찰들의 주장대로 진행을 해서 일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니 앞으로는 내 말을 좀 들어란 말이지. 이 숫자 부분도 우선 알려고 하는 그런 열린 마인드로 접근을 해야 이해가 되지. 이미 제복을 입은 권위의 입장에서 정해져 있는 눈으로 보면 이게 이해가 안 되는 거야. 머리가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모르는 것에 대한 알려는 태도의 문제야. 경찰에 고소가 들어오는 모든 사건은 다 어려운 거야. 근데 경찰들은 사건 접수도 하기 전에 고소 내용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단 말이야. 그렇게 해서 무슨 범인를 잡아. 숫자의 경우 동서양이 대동소이하지만 부분적으로 약간 다른 해석도 가능해. 그래서 여기서는 동서양과 정동배로 했을 때 나타나는 숫자에 대한 것만 설명을 하도록 하지. 1은 국가를 뜻하는 거야. 2는 민원인 혹은 정동배를 뜻하거나 나와 아들 2명을 의미하지. 3은 국가와 정동배를 뺀 나머지 모든 사람들이 포함되는데 여기서 나온 말이 사람들이 다툴 때, " 제3자는 빠져!" 라는 말이 생긴 거야. 그래서 법으로도 제3자 소송이 바로 여기에 해당하지. 그리고 4는 말 그대로 죽음을 말하지만 한편으론 삶을 말하기도 해. 5는 중립을 의미하나 국가의 행사나 초록을 말하기도 하지. 6은 정동배을 의미하나 6이 세개가 모이면 안되지. 7은 서양의 행운을 말하는데 세개가 모인 것을 최고로 치고 8은 동양의 행운을 말하나 사천을 의미히기도 하고 정동배의 권리를 말하지. 9는 모든 일의 마지막을 말하는데 이는 위급한 상황을 말하는 것이지. 그리고 0은 아무것도 아닌 거야. 이 기준을 놓고 보면 국가정보원은 111이야. 즉, 가장 앞에 있는 1은 국가이고 두 번째 있는 1은 국가의 기관이고 세 번째 있는 1은 국가공무원이야. 그래서 마지막 1일이 의미하는 것은 국가정보원 요원인데 이는 곧 국가라는 뜻이야. 그래서 이들은 죽어도 사람이 없는 거야. 왜냐하면, 요원은 곧 국가이기 때문이지. 그래서 111은 국가가 국가의 일을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지금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는 거지. 반면에 112는 국가가 공무원을 통해서 민간의 일을 해결하는 거지. 같은 경우는 무고한 사람에 대해서 국가가 짐을 지울 수가 없어. 하지만 국가의 일을 해결해야 되는 경우는 국민이 무고해도 국가의 일이기 때문에 나처럼 이렇게 개고생을 하는 거야. 다른 대통령들이 잘 모르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여기에 따라 행동한 사람이 김대중 대통령이야. 119의 경우는 앞에 있는 1이 국가이고 다음에 있는 1이 국가의 기관이나 공무원이라면 마지막 9는 위급 상황을 나타내지. 그래서 국민이나 국가의 위급 상황이 닥쳤을 때 119가 출동을 하는 거야. 서양은 한국과 어순이 반대이기 때문에 911이 되는 거지. 같은 식으로 보면 많은 숫자들이 다 이해가 돼. 731 부대의 경우는 중국은 동양의 기준이기 때문에 831이 되고 일본은 서양 문화를 빨리 받아들였기 때문에 731일이 되는 거야. 이는 국민이 누리는 자유를 제3자로 간주하고 국가가 가져간다는 뜻이지. 그래서 731부대에 민간인이 들어 가면 국가를 제외한 모든 것은 소모품이 되는 거야. 가끔 영화나 드라마 같은 데 보면 조선 사람도 731부대에서 고생을 한 것처럼 나오는데 물론 나도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조선 사람은 731부대에 끌려가서 생체실험을 당할 경우가 없어. 왜냐하면, 일본은 제1국민, 조선은 제2국민, 중국, 베트남 등 나머지 국가가 제3국민이기 때문에 731부대는 생체***으로 조선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야. 조선 사람을 생체실험하고 싶으면 721부대를 만들어야 되는 거지. 8.15의 경우도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이 투하되거나 천황이 항복하여 8월 15일 해방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 일본 천황은 전쟁의 위기에서 항복을 한 것이 아니라 이 숫자에 기준을 둔 거야. 당시 일본은 대일본 제국이야.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접근하여 친일파라면서 일방적으로 친일파나 마녀사냥으로 특정인을 원망하고 욕하여 일본에 대한 진실을 보지 못하는 거야. 대일본 제국은 바로 한반도의 역사이기도 한 거야. 조선이 망하고 36년간은 대일본 제국이었어. 그 안에는 중국도 포함되고 러시아나 베트남 등 많은 나라가 포함이 되지. 그래서 8.15라는 것은 아시아 국민 혹은 아시아 국가들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대일본 제국이 떠나는 것을 의미하지. 8은 아시아 국가들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고, 1은 아시아 여러 식민지를 총괄하는 대일본 제국을 말하는 것이고, 5는 중립으로 일본으로 부터의 자유를 뜻하지. 이는 아시아 국가들의 자유를 대일본 제국이 중립에서 관여하지 않는다는 뜻이지. 그래서 8월 15일 일본 천황이 항복을 한 거야. 이런 글을 보면 홍준표 같은 애들은 또 친일파니, 일본 앞잡이니 이런 소리를 할 거야. 이런 놈들은 다 무식해서 그래. 아라비아 숫자는 인도에서 개발된 거야. 이것이 유럽에서 발전하여 미국과 일본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온 거야. 다시 말해서, 그 발생과 쓰임이나 의미는 전 세계가 공통이란 소리야. 영어보다도 더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이며 한마디로 표현하면 상식 중에 상식이야. 그런데 말만 꺼내면 친일파니 일본 앞잡이니 이따구로 떠들어대서 그 상식을 한국 사람들만 모르는 거야. 내가 앞에서도 말했지만 일본과 백제 혹은 호남과는 여러가지 밀접한 관계가 많아. 백제가 일본에 문화를 전파한 것은 다른 말로 일본이 백제의 문화를 받아들인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하지. 그러면 많은 문화와 정치 등 다른 여러 계획들도 공유가 된다는 뜻이야. 이렇게 놓고 이 숫자를 보면 이해되는 숫자가 또 하나 있지. 바로 5.18이야. 일본 전황이 8월 15일을 선택 했듯이 이 5.18도 선택된 날짜야. 5.18은 사전에 계획된 날짜로 8.15를 거꾸로 가져가는 거지. 어떤 힘이 관여하지 않는 중립에 있는 것을 국가를 통해 자유나 권리를 갖는다는 거야. 그 중심이 광주가 된다는 뜻이지. 큰 배의 침몰 날짜를 잡은 것도 4.19에서 끝 수를 거꾸로 돌린 거지. 그래서 4.16이 되는 거야. 여기까지는 대부분 한자리에 대한 설명이고 또 두 자리가 연결되는 해석도 있어. 예를 들면 69의 경우에는 뫼비우스의 띠나 다람쥐 쳇바퀴를 뜻하고 96의 경우는 분리, 절교를 뜻하지. 79는 친구이고 63은 정상이고. 24는 이사나 끝이고 82는 서둘러라는 뜻이지. 이런 식으로 두 자리, 세 자리, 네 자리 계속 여러 가지 해석 가능한 의미가 있는데 이것이 세계 공통어라는 거야. 가끔 나도 여섯 자리, 일곱 자리 넘어 가는 숫자를 보면 해석을 하는데 대략 1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어. 어떤 경우는 2~3년이 지나야 이해가 되기도 하지. 이런 데 좀 익숙해지면 미국, 인도, 유럽, 러시아, 중국 영화 등을 보면 그동안 몰랐던 것들이 해석되는 게 진짜 많아. 내가 게임위에 있을 때 박 박사가 교차로로 불렀어. 아마도 그때 내가 처음 다수당 국장을 만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보통 교차로에서 만나면 7~8명 내지는 최소 4~5명 정도가 만났던 것 같은데 그날은 나하고 국장 그리고 김팀장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이 잘 안나. 그렇게 만났는데 뜬금없이 박 박사가 월간 신동아 이야기를 하는 거야. 지금까지의 내 글을 읽어보면 내가 왜 5.18에 대해 좀 알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당시는 이를 모르니 저 사람들이 약간 오버를 한 거야. 국장은 지가 그 월간 신동아에 글을 썼다며 뿌듯해 하더라고. 나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무슨 의미인지, 갑자기 만나서 왜 이런 말을 하는지 통 이해를 못하는 거지. 그래서 그냥 듣고만 있었어. 그랬더니 말하는 투가 월간 신동아에 글을 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라는 뉘앙스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러자 박 박사도 옆에서 호응을 해주더라고. 그러면서 언제 월간지라고 말을 하면서 계속 강조하는 것이 나보고 그 월간지를 사서 보라는 건지, 그 월간지는 그만큼 신뢰성이 없다는 말을 하는 건지 그 의미를 모르겠더라고. 그날 처음 국장을 만나서 박 박사하고 이야기를 하는데 다른 말은 하나도 안 하고 그 신동아 월간지 이야기 밖에 안 하고 헤어졌지. 그래서 나는 지금 그 상황이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더라고. 그러면서 박 박사가 하는 소리가 나보고 그 월간지를 사서 보라는 것 비슷했어. 나는 앞에서 말했지만 시사에 관심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잘 알지도 못해. 그래서 국장이 거기에 글을 썼건, 말건 관심이 없어 책을 구입해 보지도 않았지. 난 관심도 없는데 저 사람들이 지나치게 이것에 대해 민감한 거지. 이도 지금 용산에 와서 유추를 해보면, 내가 게임위에서 뇌물을 먹었니, 어쩌니 하며 난리 부르스를 친 것이 모두 지들이 만든 전략이고 자작극이지? 솔직히 나는 학교나 학원을 운영하고 싶은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야. 대학에 지원서를 많이 냈던 것은 진심으로 기능 후배 선수들이 실력대로 인정 받는데 도움이 좀 되고 싶었던 게 다야. 그동안 대학에 여기저기 강의를 많이 다녔는데 이는 내가 다른 분한테 부탁을 하거나 원서를 내서 강의를 나간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어. 배는 g전자 연구소에서 일했기 때문에 같이 일하던 형들이 대학에 교수로 간 사람들이 워낙 많아. 그래서 그 형들의 부탁으로 대학에서 강의를 여기저기 뛰었지만 내가 부탁을 해서 강의를 간 곳는 한 군데도 없어. 오히려 여기저기서 강의 오라는데도 내가 강의를 못 간 경우가 많지. 워낙 바빠서, "정말 미안하다." 하며 강의를 거부한 곳이 많았으니 대학 교수가 되기 위해 강의를 한 것은 아니지. 그래서 난 요즘도 가끔 이 사건을 생각하면 화가 나기도 하고 좀 많이 신기하기도 하면서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를 모르겠어. 솔직히 내가 무슨 정치를 하고 싶다고 한 적도 없고, 대학을 운영하고 싶다고 한 적도 없고, 하다 못해 학원을 운영하려는 계획이나 생각 자체를 한 적이 없어. 난 내 기술이 분명히 있고, 또 법률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내 이익이 충분하고도 좀 넘치도록 많은 그런 권리도 가지고 있고, 속된 말로 집도 가져 있고, 매년 뭐 장려금이라며 연금도 어느 정도 받고, 진짜 아쉬울 게 없는 사람인데 왜 갑자기 막 학교를 두고 싸우고 이러는 내 꼬라지가 웃긴 거지. 그리고 갑자기 왜 5.18은 튀어 나와서 이를 가지고 이렇게 난리를 치는지 그 자체를 모른다니까. 뭐 이런 개똥 같은 경우가 다 있는지 모르겠어. 속된 말로 내가 기술이 없거나, 학벌이 딸리거나, 돈이 없거나, 궁지에 몰린 사람도 아니었잖아. 그런데 멀쩡한 사람을 갑자기 이상하게 비비 꼬아서 나도 모르는 상황에서 지들끼리 막 난리 부루스를 치다가 지금은 내가 별 이상한 것까지 다 알게 된 거야. 기본적으로 난 저 사람들이 의심하는 그런 상태가 아니라 내가 알고 싶지도 않은 것까지 지들이 모두 가르쳐 준 거야. 지금은 이 글을 쓰면서도 여러가지가 기가차지. 이런 일이 알려지는 것이 싫으면 쿠데타 수괴가 올 3월 전에 끝내버릴 수 있었잖아. 분명히 보고는 들어갔을 거란 말이야. 이 상황에서도 이것을 계속 끝으로 끌고 가면 여기서는 내가 이런 말을 할 수 밖에 없거든. 내가 이런 말을 계속하면 지들한테 불리 할 수 밖에 없는 것을 알면서 저러는 것을 보면 참으로 이해를 못 하겠어. 나도 대학을 다녀봤지만 실질적으로 대학이나 대학원을 나오고도 현장 업무에 투입이 되면 일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 진짜 100명 중에 1~2명 정도가 능력이 있지 나머지는 대부분 쓸모가 없어. 근데 난 어쩜 1만 명이나 10만 명중에 1명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실무를 할 수 있는 사람이란 말이야. 근데 내가 왜 지금 정치판에 끼어들어 학교가 내 것이라며 이런 짓을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어. 내가 봐서는 호남 사람들이 뭔가 지금 상당히 지들끼리 오해와 착각을 해서 자꾸 이렇게 이상하게 끌고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 올 3월 전에는 분명히 끝낼 수 있었는데 왜 더 끌고 가면서 서로 힘들게 하는지를 모르겠다는 거지? 이들은 나를 게임위에서 내보내고 여의도로 보냈단 말이지. 게임위는 노무현이 정동배를 위해 준비한 기관이라고 볼 수 있지. 노무현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게임위를 나한테 넘겨 줄 계획이었던 거야. 그런데 갑자기 내가 교차로에서 5.18이 어디서 출발했는지를 안다고 하자 다수당은 지들끼리 뭔가 솥뚜껑보고 놀란 것처럼 여러 상상을 하면서 내가 어떤 놈인지 궁금해진 거야. 아마도 그래서 나를 게임위에서 빼내어 다수당으로 데려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난 국장이 월간 신동아에 무슨 글을 썼건, 무슨 이야기를 했건 관심이 없어. 내가 월간 신동아를 보고 5.18을 말한 것은 그 기자가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에 있는 거야. 지금 한국 기자들의 글은 믿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것처럼 아마 국장의 글도 비슷할 꺼야. 특히, 언론사 자체가 대한민국은 이미 다 썩어 버렸어. 나에게는 월간 신동아가 대단한 게 아니고 신동아 그 기자의 취재 방식이 신뢰를 준다는 거지. 본인이 직접 가서 취재를 했고, 무엇보다 취재한 것을 당사자가 원하면 광주 사람의 이름을 그대로 밝히고, 본인과 합의하여 김모씨라고 하거나, 아니면 성을 바꾸기도 하고, 그냥 모씨라 하거나, 어떤 경우는 실명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나이까지 그대로 밝히며 어디서 만나 어떻게 이야기를 했는데 몇 시에 어떤 일이 있었다거나, 대화한 시간이 언제라는 등 이런 것을 정확하게 적어 갔단 말이야. 난 지인들이 나를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책을 읽은 사람이야. 여러 책을 읽다 보면 그 글의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쉽게 판단을 해. 그래서 신문 기사나 글을 읽으면 그 글 쓴 사람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대충 파악이 되지. 그래서 내가 그 기사를 믿는다는 거야. 그럼 그 기사를 넘어서려면 그 글에 버금가는 증명을 해줘야 되는 거야. 근데 막연히 5.18을 말하면서 강압식으로 받아 들여야 하고 어거지로 월간 신동아를 누르는 식으로 하면 그걸 누가 믿냐고. 무식한 대한민국 국민들이나 믿지. 나는 그렇게 무식하지가 않아. 지금 다수당이 5.18에 접근하는 방식은 여차하면 김대중이 히틀러가 되고 다수당이 니치즘이 되는거야. 논리나 상식을 좀 고민을 하면서 일을 해야 돼. 기본을 알면 나한테 맞는 대우를 해줘야지. 내가 게임위에 있을 때 일본 CERO 방문을 했어. CERO에 갔더니 그곳에는 직원이 3명 밖에 없어. 상식적으로는 일본 게임 시장과 한국 게임 시장을 비교하면 비교 자체가 안 돼. 속된 말로 일본의 소니 PS 하나만 해도 그 매출이 한국 게임 시장보다 훨씬 더 커. 그런 큰 게임 시장을 가져 있는 일본의 CERO가 일본 게임물등급위원회지. CERO는 직원이 3명으로 지금 내 나이 정도 되는 할아버지 1명이 있는데 그 사람이 법인의 대표고, 30대 후반 정도 되는 젊은이 1명이 여러 일을 진행하거나 회의를 진행 하고, 경리 일을 보는 아가씨가 대략 20대 후반 정도 되는 사람이 1명 있었는데 그게 다야. 그리고 외부 위원들이 있어서 그 위원들이 심의가 있으면 모여서 심사를 하고 일정 비용을 받는 그런 구조지. 그런데 한국은 국가 기관으로 만들어 놓고 그 큰 게임 시장을 가진 CERO가 직원이 3명 밖에 안 되는데 한국는 게임 시장 규모도 작으면서 국가기관으로 출발하여 직원이 100여 명이나 돼. 그리고 100여 명의 직원 중 약 20여 명 정도는 일종의 조사관이라고 해서 국회법으로도 만들어져 있어. 이런 조사관은 하루 종일 컴퓨터 모니터로 게임 개발사 및 시장 모니터링 일을 하지. 아마도 이들 중에도 절반 정도가 정치 활동을 하는 사람들인 것 같아. 그리고 나머지 절반 정도가 본연의 업무라 할 수 있는 불법 게임을 조사하지. 이들은 서로 관여하지 않고 각자 모니터만 보고 하루 종일 앉아서 일을 하는데 그중에 제일 활동적인 한 호남 출신 직원이 어느 날 오더니 이런 소리를 하는 거야. "정위원님! 저희는 준비가 다 됐습니다. 정위원님께서 언제든지 명령을 하시면 저희는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고 저쪽 사람들 하고도 이야기가 다 끝났습니다." 뭐 이런 비슷한 투로 말을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게 무슨 말입니까?" 했더니, "때가 되면 아시게 되니 저한테 말을 해주시면 알아서 움직입니다." 라는 말을 하더라고. 그 말을 지금 해석해 보면 사이버 쪽으로 대략 20여 명 되는 사람들이 준비를 하고 있다가 어떻게 서울디지털대학을 공격한 후 게임위에서 내가 올라가서 법인을 설립하여 학교를 가져가는 그런 시스템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노무현 방식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준비를 한 거지. 이렇게 노무현은 학교를 게임위를 통해 운영 할 준비를 다 마쳐놓은 상태였던 거예요. 100여 명 정도 되는 직원은 나도 면접위원으로 참석을 했으나 직원을 선택하는 것은 나에게 결정권이 없고 면접만 참석을 한 거지. 나는 구색을 맞추는 들러리일 뿐이고 지들이 필요한 사람들을 모두 세팅을 해 놓은 거야. 그런데 내가 뜬금없이 월간 신동아 이야기를 하면서 5.18을 안다고 해버리니 김대중의 어떤 계획을 뛰어 넘는 뭔가가 있는 줄 알아 버렸던 거지. 지금 돌이켜보면 지들끼리 오해와 착각을 해서 북치고 짱구치고 다 해버린 거야. 그렇게 그 뇌물 파동을 만들어서 나를 여의도로 데려간 거지. 그렇게 여의도로 데려가서 몇 달을 지켜봐도 뾰족한 게 없는 거지. 처음에는 게임위를 통해서 법인을 만들어 학교를 운영하게 하거나 게임위를 나한테 넘겨 줄 계획이었던 것 같아. 물론 그런 절차를 나에게 보이기 위한 연출이었을 수도 있지. 왜냐하면, 김대중은 1999년경부터 국가보안법으로 준비를 한 거야. 그리고 김대중 정부의 그 실장이 나한테 했던 말들도 전부 국가보안법을 염두에 두었던 거야. 그러니 내가 좋게 해석 가능한 퍼포먼스를 만든 거지. 그런데 갑자기 내가 교차로에서 5.18의 출발지를 안다고 하자. 다수당에서는 지들끼리 뭔가 솥뚜껑 보고 놀란 것처럼 여러 상상을 해 버린 거지. 그래서 내가 어떤 놈인지 궁금하여 나를 게임위에서 빼내어 다수당으로 데려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호남 출신 직원이 말한 점 등을 고려하면 이것도 노무현이 준비 한 것 같은 절차를 거친 하나의 Fake지. 지금 내가 이런 글을 쓸 때 그들이 나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처럼 보이기 위한 쇼였다고 보는 쪽이 가깝겠지. 아무렴 노무현이 이런 지저분한 짓을 준비 했겠어. 내가 이 사건을 풀어 가면서 이런 것도 하나 집어 넣어 놓으면 내가 지들한테 고마워하라며 Show를 한 거야.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런 조사관이라는 사람들인데 한국은 국가기관에 이런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아. 특히, 게임위 같은 경우는 국회법으로 조사관이 만들어져 있어. 그리고 이 사람들이 각 국가의 여러 시스템 감시 활동을 하는 거야. 합법적인 국회법으로 이런 기능을 만들어서 만든 사람들의 뒷조사 등 자료를 수집하여 이것이 정부기관이나 국가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호남으로 들어가 버리거나 특정 단체로 들어가 버리는 거지. 나의 경우도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으니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다들 지만 나를 지켜본다고 생각을 하는 거야. 추론이지만 배가 지금처럼 글을 쓰고 있으면 최소 수명은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해. 이런 일도 익숙해지면 이제 지켜보든 말든 글을 쓰는데 문제가 없지. 아마 한국은 대통령이 글을 쓰는 것보다 배가 글 쓰는 것을 지켜보는 사람이 더 많을 거야. 지금은 국가 시스템 자체가 한마디로 개판이 된 거야. 이도 영남과 호남 사람의 차이인데. 배가 여의도에서 일할 때 음식 주문 배달을 시키면 국장 등 호남 사람들은 절대로 주문 음식을 같이 먹질 않아. 요즘은 배도 배달 음식을 다른 사람들과 같이 안 먹지. 누가 무슨 약을 탈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지. 그런데 영남 사람들은 이런 걸 의심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한 번은 노총리가 노트북을 구해 달라고 해서 내가 테크노마트의 지인에게 부탁을 해서 노트북을 사드렸지. 물론 돈은 받았어. 이 사건이 터지자 나도 좀 예민해지기 시작했지. 노총리께서 명동 사무실에 계실 때 내가 가서 그랬어, "총리님도 지금 도청이 될 수 있으니 노트북으로 글 쓰는 것도 조심하십시오." 그랬더니 노총리께서, "이거 정교수가 사줬잖아?" 그러시더라고. 영남 쪽 사람들은 노총리 정도 되는 사람도 모든 것이 노출 되어 있어. 누군가가 도청을 하거나 그 모니터를 지켜보기 위해 여러 가지 루트로 치고 들어올 수 있는 거거든. 근데 노총리 같은 분은 그런데 개념 자체가 없는 거야. 그냥 정동배가 사주면 안전하다는 생각인 거지. 난들 노트북을 하늘에서 따오겠어? 땅에서 파오겠어? 똑 같이 가계에서 파는 것 사오는 거지. 그리고 컴퓨터 가게에서 완벽한 것을 사왔다고 하더라도 통신이 연결되는 순간 모든 것이 노출되는 것이고 또 내가 24시간 내 노트북을 감시할 수도 없잖아. 근데 총리까지 되신 분이 이런데 의심을 전혀 안 하는 거야. 그러면서 나를 쳐다보는 눈이 그 뭐랄까 하여튼 좀 굉장히 달랐어. 근데 호남 쪽 사람들은 그런 글을 쓰면 완전히 차단된 것을 확인하고 뭐든 시작을 하지. 그래서 이 사람들이 무슨 전략을 세우거나 무슨 글을 쓰는지 아무도 몰라. 배는 장관이나 국회의원급 이상 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 못해도 수십, 수백은 넘을 거야. 영남 쪽 사람은 전두환, 노태우, 노재봉, 이회창 등 많은 사람을 만났고 호남쪽은 정동영, 정세균, 이종찬, 박영선 등 많은 사람을 만났지. 호남 쪽 고위직의 보편적인 특징은 말을 들으면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많아. 하지만 그들은 한마디를 하기 전에 많은 고민을 하거나 많은 토론을 거쳐서 꼭 필요하는 말을 전달하는 식인 거야. 그 말들의 대부분은 현 시점에서 보면 내 상식에서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이 많지. 근데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이 맞아. 거의 99%는 맞다고 보면 돼. 근데 영남쪽 고위직 사람들은 대부분 매우 즉흥적이야. ''''에이, 이것 그냥 해!'''' 뭐 이런 식인 거야. 그래서 나중이나 지금 맞거나 틀리고 할 게 별로 없어. 그러니 영남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호남 사람들하고 무슨 대화를 하려면 이게 어려운 거지. 그래서 아마 이를 비하하여, "거지 깽깽이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라는 말이 생긴 게 아닌가 생각해. 그러니 시간이 지나거나 끝으로 가면 대부분 호남 쪽 사람들의 말이 맞을 수 밖에 없어. 그럼 영남 쪽에 고위직 사람들이 좀 쪽팔리거나 답답하기도 하고, 깝깝하기도 한 거지. 그래서 아마 그런 말이 생기지 않았나 싶어. 그러다가 내 추론이지만 호남 쪽에서 이 사건을 잘못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물론 국장의 말을 고려해 보면 끝으로 가서 맞을 수도 있어서 이는 내가 잘 모르겠어. 이쯤에서 다시 한번 유추를 해 보면, 큰 배를 침몰 시킨 것은 다수당과 시민단체가 결합된 범죄라고 보면 되고, 노무현을 살해한 것은 경찰청장 쪽이 유력하고, 비행기는 추락시킨 것은 개딸이나 호남 사람들 쪽이 유력하지. 팬데믹을 이용한 살인은 다수당원들이나 짝퉁 정보원으로 추정 되고, 용산 참사의 경우는 하급 공무원들로 보면 될 것 같아. 내가 22년을 고생하며 배운 것은 정품과 짝퉁의 차이야. 이는 양재동 국정원 쪽의 정품이 움직이는 것과 호남 중심의 짝퉁들이 움직이는 것의 차이인데 무언가 좀 느낌이 달라. 뭐라고 딱 뿌러지게 말은 못 하겠으나 이 정품 쪽은 뭔가 좀 정품 같은 느낌이 들어. 근데 이 짝퉁 쪽은 그냥 짝퉁 같은데 뭐라고 설명을 못 하겠어. 그러면 시민단체, 개딸, 언론사주, 노동 단체, 우리법 연구회, 공무원 노조 등 이런 짝퉁들을 움직이는 사람이 있을 것 아냐? 이는 갑자기 생각이 난 것이지만 게임위에 있는 조사관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내가 게임위 많은 직원들 면접을 봤는데 조사관 면접은 봤는지 모르겠어. 어느날 조사관이라면서 여러 사람들이 들어왔던 것 같아.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좀 이상한 점이 있는 등을 유추하면 모니터링을 하는 사람들이 거기 게임위의 조사관일 가능성이 전혀 없지 않다는 소리지. 그럼 이 사람들이 짝퉁짓을 컨트롤하는 컨트롤타워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 거기에 당시 청와대 춘추관장, 연합뉴스 상임이사나 이런 사람들도 있었고 직원들 중에서도 아주 호남에 충성적인 사람들이 좀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 이렇게 되자 노무현으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져 버린 거야. 그렇게 상황이 지들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 것 같으나 1999년부터 국가보안법으로 준비 했다면 또 모든 것이 계획 된 것이고 그래. 법이 공포 되려면 적어도 국회에서 의결된 후 대통령 결제를 거쳐야 될 거란 말이야. 노무현은 2008년 2월 25일 임기가 끝나고 이명박은 2008년 2월 25일 임기가 시작 됐지. 그런데 2008년 2월 29일 사립학교법에 사이버대학이 설치 됐단 말이야. 이건 나도 정확히 모르니 확인을 해 봐야겠지만 이렇게 되면 사립학교법에 사이버대학을 설치한 것이 노무현이냐 이명박이냐라는 거야. 지금 추론을 해 보면 아무리 법이 급하게 만들어져도 사이버대학을 설치 했으면 적어도 대통령 결제가 올라 갔다가 다시 국회나 법제처로 가든지 해야 되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서 법이 공포가 됐다는 것은 지들끼리 옥신각신하다가 퇴임 전에 아마 노무현이 서명을 하고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면서 법이 공포가 된 게 아닌가 싶어. 그러면 다툼의 여지가 생기는 거지. 노무현의 책임이냐? 이명박의 책임이냐? 하는 것을 고의로 만든 거야. 이것은 내가 여의도에서 국장한테 들었는데 솔직히 난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못 알아듣겠더라고. 그래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질문을 했던 것 같아. 그랬더니, ''''이게 다툼의 여지가 된다.''''거나 이런 비슷한 소리를 하더라고. 이제 이 말 뜻은 대충 이해를 하겠는데 왜 이런 게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모르겠어. 그러면서 국장이 나보고 뭐라고 했냐면 얘들을 빼박 코너에 몰아 넣어서 내가 유리하다는 표현을 하더라고. 예를 들면, 학교를 신규 인가로 할 수 있는데 전환인가를 함으로써 기존에 원격 대학에 대한 인가서 위조 등의 범죄를 사실상 확정시켜 버린다는 거지. 그럼 내 입장에서 보면 이 사람들의 범죄가 확실시되어 버렸기 때문에 내가 지금 이 싸움에서 주장을 하고 이길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은 사실이야.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지난 20여 년간 이런 싸움을 안 했으면 나만 힘 없는 병신이 되어 블랙홀에 빠져 버리는 그런 길이 될 수도 있다는 거지. 정확하진 않으나 유추하면 학교에 들어가 있는 호남 사람들이나 운동권이 어떤 부당 이익을 취했다면 국장의 말은 나를 기만 한 것이고 그들이 부당이익을 취한 것이 없다면 나를 위한 것으로 해석도 가능하긴 하지. 그럼 노무현이 힘이 없어서 당시 그 일을 바로 끝내지 못했으니 끝에 가서 내가 이길 수 있게 길을 열어 주었다고 볼 수 있지. 이유야 어찌 됐든 난 이제 모든 현장에서 물러나는 정년 퇴임 나이가 된 사람이야. 그럼 도대체 이게 나한테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모르겠다는 거지. 게임위의 경우도 내가 당시 알기로 그런 등급 기관이 국가 기관으로 있는 것은 대한민국 밖에 없어. 그리고 미국이나 일본 등의 큰 게임 시장을 가지고 있는 나라도 지원이 별로 없는데 한국은 국가 기관에 설치를 하고 지원을 학교 직원 규모를 뽑았다는 것은 그 위원회를 민영화 시켜서 노무현이 나에게 주려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지. 그런데 호남 사람들이 이 학교도 욕심을 부리고, 개임위도 욕심을 부리고, 심지어 내가 20여년간 동굴 속에서 살며 방주와 안가를 설치하며 발생하는 이익 조차도 욕심을 부린 거야. 지금 나로서는 그렇게 밖에 해석이 안 돼. 그래서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사이에서 사립학교법에 사이버대학을 설치한 것과 이명박이 전환 인가를 한 이 시점이 나를 위한 건지, 다수당을 위한 건지, 김대중을 위한 건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모르겠다는 거야. 분명한 건 이명박을 위한 건 아니지. 이명박은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 걸? 계속해서 숫자에 대해서도 알아보면 1979년 김영삼이 가택 연금되면서 부마항쟁이 일어났지. 7개월 후인 1980년 5.18이 일어 났어. 이를 숫자로 해석을 하면 김영삼을 중심으로 하는 부산의 자유와 권리를 김대중을 중심으로 하는 광주로 가져간다는 해석이 가능하지. 1979년 1월 부산사람 박종철이 사망하고 5개월 후인 1987년 7월 전남 출신 이한열이 사망을 했지. 이는 부산에서 광주로 가는 것에 대해 관여하지 않는다는 해석이 되는 거야. 이처럼 숫자로 해석이 가능한 것들이 많아. 내가 호남 사람들을 많이 만나 봤는데. 이 사람들의 보편적인 특징이 다른 지역과 다르게 바로 이런 숫자나 기호로 움직인다는 거야. 영남 사람들 같은 경우는 도대체 그 숫자가 무슨 의미이며 어디 007 영화 같은데 나오는 것으로 생각을 하는데 호남 사람들은 이게 생활이야. 내가 만난 박 박사도 기호학 박사야. 이런 맥락으로 지금의 사건에 대해 알아보면 2000년 대한민국 국회는 평생교육법에 원격 대학을 설치했어. 5년 후인 2005년 5월 18일 학교에 황 박사가 구속되면서 MBC 9시 뉴스 등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사건이 발생했지. 그리고 5년 후인 2010년 창원 지검에서 인가서 위조 사실을 확인하고 같은 해 용산경찰서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범죄 사실을 확인했죠. 여기서부터는 좀 다르지만 뒤에 다시 설명을 하기로 하고 편의상 전략 혹은 정책이라 생각하며 날짜를 말하겠어. 5년 후인 2015년에 큰 배가 침몰하고, 5년 후인 2020년에 코로나가 발생하고, 5년 후인 2025년 하늘에서 비행기가 추락한 거야. 이런 것을 디자인에서는 규칙과 변화라고 해. 어떤 패턴이 동일하게 계속 쭉 이어져 있으면 재미가 없다는 거지. 보통 사람이 모자를 바로 쓰면 그냥 모자를 쓴 것이지만 옆으로 살짝 돌리면 패션이라고 표현을 하지. 이는 옷을 입었거나 모자를 쓴 것과 패션을 연출한 것의 차이야. 그래서 살짝 변화를 줌으로서 다양성을 강조할 수도 있고 독창성이나 창의성을 주장하기도 하지. 전략이나 정책에서는 그 규칙에 대한 패턴을 감출 수도 있고 또 다이나믹한 연출을 할 수가 있지. 그래서 앞에서는 5년을 주기적으로 딱딱 끊어서 큰 일이 발생을 하다가 뒤에 5년은 1년씩을 앞당긴 거야. 큰 배의 경우는 2015년이지만 변화를 주어 1년을 앞당겨 2014년에 침몰한 것이고, 2020년 코로나의 경우는 장기간 되는 것이기 때문에 발생 연도가 2020년인 거야. 그리고 2025년 역시 1년을 앞당긴 거지. 1년이 앞당겨진 것은 계획에서의 변화일 수도 있고 정동배의 22년간 노력이 1년을 앞당겼을 수도 있어. 사실 그래봐야 그 1년이라는 것이 갑신정변 처럼 며칠 차이야. 그래서 2024년에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같은 해, 같은 달 비행기를 추락시킨 거야. 그리고 내가 이 소송을 22년째 진행을 하고 있는데 2022년에 용산에서 참사가 일어나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거지. 이처럼 약간의 변화는 있었지만 큰 계획에서는 2000년부터 지금 오늘 2026년까지 사건의 패턴이 동일하다는 거지. 즉 일본이 조선을 먹기 위해 노력한 그 60년의 세월과 지금 이 문제가 거의 흡사하게 닮아 있다는 거야. 큰 배의 경우 1년이 앞당겨진 것은 또 다른 해석도 가능하지. 김대중 대통령령에 따른 정책대로 2000년 기준으로 5년식 일정하게 실행이 됐으면 그 모든 권리가 온전히 정동배에게 있다고 볼 수 있지. 하지만 전략의 일정을 앞당김으로서 그 행사자가 권리를 주장할 수가 있는 거야. 일본이 조선을 먹을 때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과 함께하며 계획대로 진행을 하다가 일본이 독자적으로 먹으려고 1년을 앞당겨 집행을 했지. 마찬가지로 학교의 문제도 5년 주기로 집행을 하다가 막판에 큰 배의 침몰과 비행기 추락을 1년씩 앞당기게 된 거야. 그렇게 해서 이를 실행한 사람들이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믿은 거지. 한편으로 일제의 전략를 유추하면 결과적으로 그 권리는 오롯이 정동배 혼자만 가지게 된 것이지. 이렇게 보면 정동배가 모든 범행의 공범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배는 지난 22년간 국가와 함께 했기 때문에 그 범행의 공범이 될 수는 없고 다만 권리의 주체가 될 수는 있지. 당시 배와 국가는 사천시 곤명면에서 권리의 실체인 안가와 방주를 만들고 있었어. 큰 배의 침몰이나 비행기의 추락 등은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과 같은 거야. 국가보안법이 아닌 일반 각하에서의 예를 들면, 임진년에 고니시가 몇 년까지 부산 동래성을 점령하고, 몇 년까지 한양을 정복하고, 몇 년까지 평양을 정복한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가토가 고니시보다 하루 먼저 한양을 정복해 버리면 공신은 가토가 되는 논리지. 사천시에서 준비한 그런 배가 아니라 실제 학생이 많이 타고 있는 큰 배를 침몰 시킨다는 것은 고니시의 경우 한양을 겨우 점령할 계획을 세웠는데 가토는 더 빨리 한양을 정복하여 왕을 잡은 게 되는 거지. 그럼 당연히 일등공신은 가토가 되는 거야. 이 사건의 경우에 왕을 잡는 것은 권리를 가지는 것이고 권리를 가지려면 방주와 안가를 설치하는 거야. 이 사건이 처음에 언론사와 벤처기업이 준비하여 만들었다면 게임의 원리를 그대로 도입한 거야. 그래서 이것은 RPG 게임을 이해하면 사건을 쉽게 알 수가 있지. 즉, 국가의 결정에서 인용이 아닌 각하로 마무리가 됐을 경우에 운동권, 언론사주, 우리법연구회, 개딸, 공무원 노조, 정보원 짝퉁 등이 권리를 주장할 수가 있지. 왜냐하면, 대통령령을 내린 정동배를 주권으로 하는 정책은 5년 주기였는데 이것을 1년 앞당김으로서 그 권리의 주체가 변했다고 주장을 할 수가 있는 거야. 같은 경우는 각하로 모든 것이 처리되면 법률적으로 가능한 일이야. 이처럼 약간의 변화는 있었지만 큰 계획에서는 2000년부터 오늘 2026년까지 사건의 패턴이 동일하다는 거지. 즉 일본이 조선을 먹기 위해 노력한 그 60년의 세월과 지금 이 문제가 거의 흡사하게 닮아 있다는 거야. 또한 이한열이 연세대학교 정문에서 사망한 당시의 동영상이나 사진들을 보면 처음에 시위를 할 때는 여러 학생들 무리가 있었어. 이한열이 연세대학교 정문에서 사망한 당시 동영상이나 사진들을 보면 처음에 시위를 할 때는 여러 학생들 무리가 있었지. 이한열도 똘똘 뭉친 무리 속에 있어서 용기를 얻어 열심히 화염병을 던졌던 거야. 그리고 시위 자체도 전국적인 민주화 운동 중에 그 시위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약간의 국지성이었어. 그렇게 시위를 같이 했던 무리 중의 1명이 최루탄을 맞고 다쳤으면 같이 있던 무리가 더 크게 분노를 하거나 그 동료를 구하기 위해서 덤벼 드는 게 상식이지. 그런데 이한열의 경우는 친구 1명만 옆에 남고 나머지 시위대는 전부 한쪽으로 피해 버린 거야. 그래서 이한열이 최루탄을 맞기 전에는 여러 시위꾼들과 같이 있었는데 최루탄인지 폭죽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를 맞고 나서는 시위대들이 일시적으로 동시에 싹 빠져버렸다는 거야. 마치 괴릴라전 비슷한 거지. 사람이 다쳤는데 시위대가 거기서 쏙 빠져버린다는 게 말이 되나? 유추하면 이한열이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다음 옆을 지키던 그 학생을 제외한 나머지가 전부 공범들이야. 지금 나한테 했던 것과 똑같은 그런 수법이지. 드라마나 영화처럼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이한열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을 수도 있어. 그때 같이 있던 여러 모사꾼들, 일종의 운동권이지. 이들이 이한열을 부추겨서 같이 열심히 최루탄을 던지다가 그들 중 한명이 이한열을 향해 폭죽을 쏴 버린 거지. 당시 앞에 있던 경찰들은 그냥 진압하는 장면을 촬영하는 정도로 생각했을 수도 있어. 그래서 허공을 향해 최루탄을 막 쏴댄 거야. 그런데 사람이 맞아버린 거지. 준비는 큰 퍼포먼스 정도로 생각했으나 사람이 맞으면 상황이 달라지는 거야. 그때부터 언론사는 본연의 목적처럼 계속 떠드는 것이고 경찰은 책임을 회피하는 쪽으로 돌아서 버리는 거지. 그렇게 참석했던 운동권은 원래의 목적이 이한열을 죽이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해산을 해버리면 끝나는 거야. 거기서 시위를 한다고 그 사람들이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단지 이한열을 죽이고 언론에서 바통을 이어받는 거지. 원래의 목적이 언론에서 떠들기 위해 이한열이 최루탄 맞는 장면 등을 카메라 감독이 스케치하는 거야. 방송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 사건을 절대로 이해가 안 돼. 이들은 일종의 뉴스 메이커들인 거지. 그러면 한국의 5천만 국민 중에는 이 진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단 1명도 없이 모두 경찰이나 국가 권력을 원망하며 운동권을 응원하게 되어 있다는 거야. 그런데 무식한 이한열이 거기서 죽자 살자 뛰어다녀 버린 거야. 이 사건과 닮은 것이 경찰은 허공에 최루탄을 쏜 것 뿐이지. 그리고 그 앞에 운동권 중의 한 명이 이한열을 향해 폭죽을 쏜 것 뿐이고, 언론은 음흉한 사실 보도를 한 것뿐이야. 그리고 이한열이 폭죽에 맞았을 뿐이지 안 죽었을 수도 있어. 이송 도중에 응급 대원이나 의사들에 의해서 계속 유사 폭행 혹은 마이크로파나 약물에 의해 결국 죽음을 받아 들여야 되는 운명이었던 거야. 큰 배의 경우도 한 사람이 어셈블리에 쇠말뚝을 박아 놓은 것 뿐이야. 사람들 말로는 다들 학생들을 구한다고 한 거지. 그리고 선장은 배가 빨리 가라 앉지 않게 문을 닫아서 조치를 취했어. 나름 시민단체는 계획한 대로 학생들을 구하려고 모든 준비를 했던 거지. 근데 관료들이 지시를 안 하는 거야. 관료들은 지가 지시를 해서 사람이 사망하는 것은 그들의 책임이지만 그전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지. 결국은 처음 쇠말뚝을 박은 사람부터 해서 마지막 지시를 하지 않은 책임자까지 모두 죄책감을 갖지 않고 감옥에 간 사람도 모두 억울한데 학생만 300명 넘게 죽은 거야. 지금 이 학교 문제도 똑같은 거지. 노총리는 당신이 문서를 만들었다고 했어. 그런데 이것을 내가 의조했다며 파면을 해 버린 거지. 그래도 법원 판결문은 책임을 안 지는 거야. 억울하면 항소를 할 수 있기 때문이지. 그러면서 이게 계속 눈덩이처럼 커져서 수천 명이 죽은 거야. 그런데 보통의 사건에서 이한열 같은 경우에는 대한민국 법으로 책임을 물을 수가 없어. 내가 다수당에서 이 소리를 여러 번 들었는데 여러 사람이 가담을 해서 바늘로 죽을 때까지 찔어 죽이면 법은 책임을 묻지 않는다기에 그냥 헛소리를 하는 정도로 받아들이고 말았지. 이쯤 와서 여러 사건들을 돌이켜보면 한국 대부분의 큰 사건은 똑같은 원리로 진행이 되는데 법은 어쩌지 못하는 거야. 결국 운동권의 전략이라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고 그냥 바늘로 사람이 죽을 때까지 찔러대는 게 기본 전략이라고 보면 돼. 그러면 그 잘난 판사들이 아무것도 못한다는 거지. 근데 지금 이 사건의 경우에는 국가보안법이기 때문에 전부 다 처단이 되는 거야. 나라의 법 중에는 이런 법 1개 정도는 있어야 되지 않겠어! 이와 유사한 것이 내가 청계산에 갔을 때도 똑같았던 거야. 학교 직원들과 청계산에 올라 갔는데 갑자기 100여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싹 없어져 버린 거야. 그때만 해도 내가 이런 세상을 너무 몰랐지. 그래서 나하고 이 박사하고 내려 오면서 이야기를 했었어. 그래서 내가 이를 게릴라 전이라고 했지. 그리고 얼마 후에 북한산에 갔는데 똑같은 현상이 생긴 거야. 100여 명 정도 되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가 싹 빠져 버리는 거야. 그리고 또 이와 유사한 경험을 한 게 정동영이 대통령 후보 발대식을 하는 자리에서도 그랬어. 거기도 100여 명인지 200여 명인지는 모르겠으나 많은 국회의원들과 대통령 후보 등이 모여 있었는데 당시에 상황이 이해가 안 되더라고. 나는 관계자가 시키는데로 행사 끝날 때까지 한 곳에 계속 서 있다가 남산 봉화대까지 걸어서 올라갔단 말이야. 그리고 산으로 이렇게 간다라고 사회자가 설명을 해 줬고 내 앞에는 천정배 혼자 딱 서 있었던 거야. 앞에서도 설명을 했지만 당시 상황에서 내가 뭐라고 말을 못 하겠는 거지. 그렇게 천정배 눈치를 보고 있는데 누가, "이쪽으로 올라 가시면 됩니다." 해서 잠깐 올라가는 사이에 돌아보니 그 100여 명인지 200여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전부 없어져 버린 거야. 그래서 그냥 온 김에 오랜만에 남산에 한 번 올라 가보려고 길을 가는데 작은 돌 위에 김효석 의원이 서 있었지.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이 아무 없어서 다 가버렸는가 보다 하고 나 혼자 봉화대까지 올라 갔지. 특히, 남산은 나하고 여러 인연이 많으니 그냥 봉화대까지 올라가며 요리조리 혼자서 구경을 했어. 그러다 얼마 후 내려가려 하는데 다른 길에서 정동영 후보하고 다른 의원들이 우르르 올라 오더라고. 근데 사람이 한 100여 명이 우르르 모여 있다가 쏙 빠져버리거나 나 혼자 다른 길로 가고 하는 이 느낌이 이한열이 최루탄 맞았던 그 상황과 내가 청계산에서 느꼈던 상황과 북한산에서 느꼈던 상황과 이 남산에서 느꼈던 상황이 아주 흡사하다는 거지. 보통의 사람 같은 경우는 약간 멘붕이 왔을 수 있는 그런 상황이지만 난 어릴 때부터 이런데 단련이 되어 그냥 ''''이게 뭐지?'''' 정도만 생각했지. 그러니 지금 돌이켜 보면 운동권 이 사람들이 하는 짓이 그런 것 같아. 사람이 많지도 않은데 어떤 카메라나 이런 걸 갖다 놓고 한 100여 명이 우르르 몰려 갔다가 마치 그럴듯하게 보이게 해놓고 싹 빠져버리는 거지. 이한열이 연세대학교 정문에서 최루탄을 맞은 당시의 동영상이나 사진들을 보면 처음에 시위를 할 때는 여러 학생들 무리가 있었어. 그리고 시위 자체도 전국적인 민주화 운동 속에서 그 시위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약간 국지성이 없지 않아 있지. 그러면 시위를 주동했던 사람들 중의 1명이 최루탄을 맞고 다쳤으면 같이 있던 사람들이 더 분노를 하거나 그 동료를 구하기 위해 덤벼드는 게 상식이지. 그런데 이한열의 경우는 친구 1명만 옆에 남고 나머지 시위대가 전부 한쪽으로 피해 버린 거야. 이한열이 최루탄을 맞기 전에는 여러 시위꾼들과 같이 있었는데 최루탄인지 폭죽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를 맞자 시위대들이 일시적으로 싹 빠져버린 거야. 마치 괴릴라전 비슷한 거지. 사람이 다쳤는데 마치 사전에 모의만 한 것이 아니라 어디서 여러차례 연습까지 마친 것처럼 시위대가 거기서 쏙 빠져 버린다는 게 말이 되나? 유추를 해보면 동일한 패턴이거나 유사한 전략이라고 놓고 봤을 때 이한열이 주변에 있던 그 운동권들이 전부 공범이야. 이한열 바로 앞에서 폭죽을 쏜 사람만 범인이 아니라 그는 폭죽을 쏘는 행위를 한 것이고 당시 같이 있던 100여 명 되는 운동권이라는 학생들이 전부 이한열을 죽인 공범이라는 것이지. 이들은 이를 스스로 혈맹이라고 부르는 거야. 혈맹은 혁명보다 오래가지. 혁명은 사회를 바로 잡거나 정의를 세운다는 명분으로 자유를 억압하여 올라가는 것이라면 혈맹은 그들 공동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죽임으로써 모두가 범인이 되어 피로서 맺어지는 관계이기 때문에 쉽게 흩어질 수 없게 만드는 거야. 이들은 공부는 안 하고 이미 민주화 운동에서 지들 동료를 죽여 군인에게 덮어 씌워 혈맹의 맛을 본 거야. 같은 사건이 김대중, 노무현을 통하면서 진행이 되자 이를 아는 공무원 노조, 언론사주, 일반 노조, 우리법연구회, 개딸, 호남 세력, 시민단체, 짝퉁 정보원 등이 다음 세대를 장악 하려고 노무현, 노회찬 살해. 큰 배의 침몰, 비행기 추락, 팬데믹 학살, 용산 참사, 화재 등으로 혈맹을 맺었다고 보면 되지. 내가 컨트롤 못하는 돈은 먹어도 좋고 아니면 말지만 정권을 잡기 위한 혈맹을 맺는 것이라면 수천 명의 사람을 죽이는 정도는 쉽게 할 수가 있지. 박정희가 총칼로 권력을 잡으면 전두환은 따라갈 수밖에 없는 거야. 마찬가지로 민주화 운동권이 일반 국민이나 지 동료를 죽여 혈맹을 맺어 정권을 잡아 누리는 것을 본 사람들은 다음 세대도 따라갈 수 밖에 없는 거야. 내가 청계산이나 북한산에 갔을 때나 여기 남산에 왔을 때도 똑같은 그런 분위기였어. 일상과 비슷한 분위기를 만들어서 1명을 앞으로 보내 버리고 지들은 뒤로 쏙 빠져 버리는 거지. 지금 내 사건이 쭉 이렇게 걸어온 자체도 똑 같은 경우야. 이런 걸 하나의 패턴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배는 어떤 인문학적 지식이나 아니면 어떤 조직에 가입되어 성장해 온 사람이 아니야. 기술을 배우고 뒤늦게 공부를 한다는 것은 혼자서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는 거지. 그래서 주변에 사람들이 똘똘 뭉쳐 있다가 쏙 빠진다고 해서 그렇게 멘붕이 오거나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거지. 뭐 그렇다 하더라도 당시 내가 워낙 상황이 어려운 처지였고 힘들었기 때문에 그 봉화대에 서 있을 때 내가 왕따를 당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은 들었지. 어차피 큰 기대는 하지 않았으나 갑자기 정동영이 목소리가 들리는 거야. 내가 봉화대 쪽에 서 있을 때는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다들 가버린 줄 알았는데 갑자기 정동영의 목소리가 들리니 솔직히 좀 반갑긴 하더라고. 왕따는 아니구나 하는 그런 안도감 비슷한 것이 있었지.거기가 야간 위에서 보니까는 약간 오르막길로 이렇게 구석으로 이리 올라오던데 제일 앞에 정동영이 딱 있고 내가 거기서 그쪽을 딱 보고 있으니까 아마 내가 정치의 뜻이 있는 사람이었으면은 가서. 악수는 안 처하더라도 뛰어가서 옆에서 서 있는 척은 했을 거야. 근데 나는 그런 뜻으로 간 사람이 아니잖아. 의기를 애초에 그래서 오히려 좀 내가 더 *어져 버렸지. 방에 안 되는 쪽으로 나는 생각을 하고 더 멀어져 버렸지.그런 것 때문인데 그런 쇼를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한참 서 있다가 포기를 하고 내려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정동이 거기서 막 기자들한테 무슨 설명을 하고 말을 하고 막 그러면서 울었는데 보니까 또 거기 이따수당 의원들이 주르륵 올라오는 거야. 그 사항은 참 뭐라고 말하면 못 하겠어. 당해 보지 않으면 아주 웃긴 느낌이 들더라고. 느낌이 들기는 그렇지만 뭐 그래? 갖고 쭈고는 내가 가서 정또한 이한열이 연세대학교 정문에서 사망한 당시에 동영상이나 사진들을 보면 처음에 시위를 할 때는 여러 학생들 무리가 있었어. 그리고 시위 자체도 전국적인 주위 속에 그 시위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약간 꼭지성이 없지 않아 있어. 그러면 시위를 까치하던 사람들이 그 속에 1명이 지구 지렛탄을 맞고 다쳤으면 같이 있던 사람들이 더 분노를 하거나 그 동료를 구하기 위해서 덤벼 드는 게 상식이지. 그런데 이한열의 경우는 친구 1명만 옆에 남고 나머지 시위하는 사람들이 전부 한쪽으로 피해 버린 거야. 그래서 2한1이 지렛탄을 막기 전에는 여러 시위꾼들과 같이 있었는데 지렛탄인지 폭죽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를 막고 나서는 시위대들이 일시적으로 싹 빠져버렸다는 거야. 마치 괴릴라전 비슷한 거지. 사람이 다쳤는데 시위대가 거기서 쏙 빠져버린다는 게 말이 되나? 이와 유사한 게 내가 양진웅 무슨산이야? 청계산에 갔을 때도 똑같았던 거야. 학교 직원들과 가치산에 올라갔는데 갑자기 100여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싹 없어져 버린 거야. 그때만 해도 내가 이런 세상을 몰랐지. 그래서 나하고 2 박 사 하고 내려오면서 이야기를 했었어. 그래서 내가 일을 길일라 주인이라고 했지. 그리고 얼마 후에 북한산에 갔는데 똑같은 현상이 생긴 거야. 100여 명 정도 되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가 싹 빠져버리는 거야. 그리고 또 유사한 내가 경험을 한 게 정동영이 대통령 후보 빨대식을 하는 자리에서도 그랬어. 거기도 100 여 명인지 200 여 명인지는 모르겠으나 많은 국회의원들과 대통령 후보 등이 모여 있었는데. 나는 행사 끝날 때까지 거기 계속 서 있었고 남산 봉화대까지 걸어서 올라갔단 말이야. 그리고 산으로 이렇게 간다라고 사회자가 설명을 해 줬고 그 내 앞에는 천정배 혼자 딱 서 있었던 거야.
그 느낌이 사람이 한 100여 명이 우 모여 있다가 쏙 빠져버리고. 또 나 혼자도 다른 길로 가고 하는 이 느낌이 이한연이 지렛탄 맞았던 그 상황과 내가 청계산에서 느꼈던 상황과 북한산에서 느꼈던 상황과 이 남산에서 느꼈던 상황이 아주 흡사하다는 거지. 그러니까 지금 돌이켜 보면 운동권 이 사람들이 하는 짓이 그런 것 같애 사람이 많지도 않은데 어떤 카메라나 이런 걸 갖다 놓고 한 100여 명이 우 몰려갔다가 마치 그럴듯하게 보이게 해놓고 싹 빠져버리는 그런 상황이 아닌가 싶어. 그래서 2한1도 내가 유추를 해보면 같은 패턴이라고 동일한 패턴이라고 놓고 봤을 때 2한1주변에 있던 그 운동권이라는 사람들이 다 공범이야. 그 한 100여 명 되는 사람들이 그러니까 2 안을 바로 앞에서 폭죽을 쏜 사람만 범인이 아니고 그 사람은 폭죽을 쏘는 행위를 한 것이고 그 같이 있었던 운동권이라는 학생들이 전부 그날 이한혜를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야.
내가 청계산이나 북한산에 갔을 때도 여기 남산에 왔을 때도 똑같은 그런 분위기였어. 분위기를 띄워서 1명을 앞으로 보내 놓고 지들이 쏙 빠져버리는 거지. 지금 내 사건이 쭉 이리 걸어온 자체도 똑같은 경우야. 이런 걸 하나의 패턴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어. 나는 어떤 인문학이나 아니면 어떤 조직에 가입하여 성장해 온 사람이 아니야. 기술을 배우고 뒤늦게 공부를 한다는 것은 혼자서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는 거지. 그래서 주변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있다가 쏙 빠진다고 해서 그렇게 멘붕이 오거나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거지. 그렇다 하더라도 당시 내가 워낙 상황이 어려운 처지였고 힘들었기 때문에 그 봉화대에서 왕따를 당한 것 같기는 했지. 어차피 큰 기대도 안했지만 저쪽에서 정동영 목소리가 들리는 거야. 솔직히 갑자기 목소리가 들리니 좀 반갑긴 하더라고. 이는 저들의 전략을 고려했을 때 어느 정도 먹힐 수 있다는 것이지 나의 심리적인 움직임은 거의 없었어. 정동영이 운동권이었는지 난 잘 몰라. 하지만 정동영도 서울대학 출신이지. 서울대학 정도 나오면 공부를 할 때 매우 집중을 해야 돼. 황 교수님이나 지귀연 판사처럼 천재 중의 천재라 하더라도 공부를 할 때는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집중을 해. 대신 나처럼 집중을 하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집중이 되는 거지. 내가 한참 공부를 할 때는 컨디션 조절을 엄청 열심히 해야 돼. 그렇게 해서 진짜 운이 좋으면 초집중으로 공부를 하다 보면 훌쩍 하루가 가버리는 수가 있는데 이런 경우는 많지 않아. 근데 천재 중의 천재들은 생활이 그런 거야. 황 교수님도 가끔 학교에서 책을 읽다가 순간적을 그렇게 아침까지 있었다고 했지. 배는 공부를 할 때는 그렇게 집중이 잘 안 되지만 기능올림픽 선수 생활을 할 때는 황 교수님이나 지판사보다 더 집중을 하게 돼. 이는 천재들도 이해를 못 할 정도로 집중을 하는 거야. 아침에 내가 훈련을 시작 하면 진짜 한 5분, 10분 밖에 안 됐는데 하루가 가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어. 특히, 대회를 할 때는 3일이나 5일이 순간적으로 지나 가버려. 그만큼 집중을 한다는 소리지. 어떤 일에 집중을 하는 것만 놓고 보면 기능올림픽 출신인 내가 황 교수님이나 지판사보다 더 집중을 했다고 볼 수도 있어. 20대 중반에 공부를 시작하면서 서울대학원을 목표로 잡는다는 것은 바로 이 기능올림픽에서 가진 정신력 때문에 가능했던 거야. 선수 생활 할 때의 집중력으로 공부를 하면 못 이룰 것이 없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서울대학원을 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 그때 고시를 알아 사법고시에 응시 했으면 내가 수석을 하여 노무현, 문재인, 구데타 수괴가 고시에서 *어졌을 거야. 미친 자신감이 아니라 초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아를 발견했다고 보는 것이 맞지. 이 소리가 무엇을 뜻하냐면 운동권은 대부분 운이 좋아 좀 있는 집에서 태어나 대충 공부해서 대학을 간 사람들이라고 보면 돼. 그러니 초집중에 대해 이해를 못하는 거지. 정동영 같은 경우는 공부를 잘한 사람이야. 그러니 어느 정도 집중을 알겠지. 하지만 서울대학 가서도 공부를 계속했는지 그건 내가 잘 모르지. 그런데 보통의 운동권은 이 집중을 잘 몰라. 똘똘 뭉쳐다니는 것이 사는 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이 집중을 잘 모른다고 보지. 그 중에는 서울대학 출신들도 있는데 이들은 뭔가 노림수가 있든지 아니면 고등학교 마칠 때까지만 집중을 한 사람이야. 집중을 잘하거나 나처럼 초집중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똘똘 뭉쳐다닐 시간이 없어. 평생을 배워도 부족한데 그렇게 쓸데없이 똘똘 뭉쳐 다니며 소리 지르고 할 그럴 여유가 없어. 데모는 똘똘 뭉쳐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맞으나 정당성이 있어야 하고 명분이 뚜렷 해야 되는 거야. 그런데 생활이 똘똘 뭉치는 데 있으면 이는 범죄 밖에 안 돼. 민주주의 운동을 위한 데모의 경우도 시국 선언을 발표하거나 시위에 대한 정당성을 공표를 하고 권리 혹은 자유를 주장 하는 것을 민주주의 운동이라고 해야 돼. 어떤 일에 집중을 한다는 것은 평생을 해야 되는 거거든. 이 집중을 하다가 한 번 정신을 놓아 버리면 다시 잡기가 참 힘들어. 그래서 이런 사람들이 똘똘 뭉쳐 다니는 거야. 이들의 행동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피해가 되기 때문에 전부 같이 죽자는 꼴 밖에 안 되는 거야. 민주주의를 악용한 세상의 암덩어리라고 보면 되지. 이런 암덩어리는 절대 자생적인 치유가 안 됐기 때문에 도려내는 수밖에 없어. 그래서 똘똘 뭉쳐 우르르 몰려 갔다가 쑥 빠지고 하면 집중력이 좀 *어졌던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멘붕이 올 수가 있어. 근데 기능올림픽 선수나 기술을 집중적으로 배운 사람들은 사실상 거의 그런데 흔들리지 않아. 특히, 배는 전공으로 계속 공부를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솔직히 이런 소송에 휘말리지 않았으면 90살, 백살까지 살아도 집중적으로 공부를 해야 될 일들이 계속 쌓여 있는 사람이야.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다니며 나를 왕따 시켰다는 것은 암튼 그 사람들이 그렇게 수고를 했으니 그들의 입장을 약간 대변해서 부가 설명을 한 것일 뿐 내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아! 빨리 가서 새로운 기술을 찾거나 책을 좀 봐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마인드 자체가 완전히 다른 거야. 나는 노총리하고 압구정동에서 식사를 하면서도 인문학을 배운 사람들 입장에서는 노총리의 말 한마디가 매우 중요할 수 있겠지만 지금 총리님한테는 죄송한 말이지만 나는 시간 낭비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어. 나는 뭐 조규향이도 그렇고 이종찬도 그렇고 웬만한 사람들을 많이 모셔 봤는데 거기서 내가 크게 배울 게 없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어. 그렇기 때문에 운동권이 나한테 했던 행동들은 사실상 거의 가치가 없어. 정동영 체면도 있고 해서 그냥 왕따니 이런 표현도 좀 사용 했지만 사실상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 같아 해본 말이지 나한테는 거의 의미가 없으니 쓸데없는 짓을 한 거지 기술은 아니지만 내 생각으로 서울대학 출신들은 대부분 그런데 거의 흔들리질 않아. 굳이 억척을 좀 해보면, ''''뭐 이런 정신 나간 놈들이 다 있지.'''' 이런 정도야. 서울대 중앙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들은 평생 책을 봐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야. 근데 공부를 집중하지 못한 사람이거나 어떤 일에 집중을 못하는 사람들사람들이도 그런 식으로 하면 많이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긴 해. 그런데 내가 흔들리는 사람이었으면 학교에 있을 때 청계산에서 그 이상한 게릴라전에서 많이 당황을 했겠지. 하지만 난 전혀 흔들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런 사실 자체도 이 사건 터지고 고소장 작성하면서 알게 된 거야. 물론 정동영이라든지 한국 최고의 권력가 수백 명이 왕따를 시키면 좀 흔들릴 법도 하지만 난 그런게 전혀 없었어.
나는 봉화대 위에 서 있었고 걔는 이쪽에서 이렇게 올라오는데. 제일 앞에 중동형이 오르고 기자들이 옆으로 뚝뚝 있더라고. 내가 이제 앞에 가서 인사를 하기에는 제일 좋은 위치지. 딱 마주보고 있으니까 근데 나는 그 상황도 이해가 안 되는 게 내가 가서 뭘 어떻게 해야 될지는 모르겠더라고. 솔직히 누가 봐도 정동현 잘난 사람이고 똑똑한 사람이잖아. 나는 아닌데 그럼 내가 거기 나타나면은 무조건 방에밖에 더 되겠어. 그래서 뭐 속으로는 도움은 안 되면은 빵이라도 하지 말자라는 그런 게 좀 있었지.
카메라도 있고 한 상태에서 정동이 앞에 있으면 내가 가서 탱강을 피울 수도 있는 거고 무슨 말을 하면은 언론에 노출이 될 수도 있겠지. 근데 솔직히 나는 저 사람들은 지들이 이런 일을 쭉 만들어 놓으니까 내 체질을 잘 아니까는 내가 뭘 도움을 청하기를 바랐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당시 나는 내가 뭘 해야 될지도 모르는 거야. 기본적인 게 삼원서 위조인데 그 사문서를 만든 노새봉이 당신이 만들었다고 하고 있고 더군다나 경찰서에 진술도 하고 법은 어디든 불러라. 내가 행거다라고 말해 주겠다고도 하고 하 그런데 나는 또 위조 보험 위대해서 파면도 당하고 이런 손해도 보고 있다는 거지. 골 때리는 상황인 거지. 그런 상황에서 내가 뭘 요구를 해야 될까? 이미 법원 중앙지방법원 판결문까지 나 버렸는데 그럼 이야기를 한번 뻔한 거야. 정동이 그래. 뭘 준 교수님 뭘 도와줄까요? 하면은 내 문서 위주 안 했는데 위조했다고 돼 있습니다. 그럼 위조 그 만드신 분이 누구입니까? 노재봉입니다. 분노제공이 문서를 만들지 않았다고 합니까? 아니요.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대화 내용이 이상하잖아. 뭔가.그래서 내 입장이 되면은 무슨 말을 못 해?
한참 서 있다가 포기를 하고 내려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정동이 거기서 막 기자들한테 무슨 설명을 하고 말을 하고 막 그러면서 울었는데 보니까 또 거기 이따수당 의원들이 주르륵 올라오는 거야. 그 사항은 참 뭐라고 말하면 못 하겠어. 당해 보지 않으면 아주 웃긴 느낌이 들더라고. 느낌이 들기는 그렇지만 뭐 그래? 갖고 쭈고는 내가 가서 정동영 의원한테 인사한다고 뭐 어? 내 사무실 위조가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내가 뭐 정치를 할라고 그 사람한테 구부를 한 적도 없고 그래서 그냥 어 그 올라왔다가 올라오는 방향 보고 나는 반대방향으로 그냥 내려와 버렸지. 내일이 오는데 그때 또 누가 1명이 붙어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데? 인문학을 공부하고 한 사람들은 이렇게 조직을 이루어서 조직이 뭘 쭉 끌고 가고 하면 왕따를 시켜 버리고 하면 아마 사람이 상당히 면봉이 오는 것 같아. 그래서 또 조직에 붙으려고 노력을 하고 그러는 것 같아. 나는 기술자로 워낙 오래 산 사람이야.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 서울대학에서 수석을 할 정도로 공부를 한 사람이야. 그런 사람은 우 몰려다니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 거기에서 무 몰려가다가 쏙 빠졌다 해서 멘붕이 오는 게 아니고 음 몰려가다가 쑥 빠져버리면 오히려 좀 편해. 편한 쪽이지. 그러니까 이 운동권하고 나하고는 뭐가 많이 안 맞는 거야. 거기 저 내가 앞에 글을 올려갖고 2한1 쪽으로 수사를 하고 있는지 안 왔는지는 모르겠는데 지금 좀 와서 또 보니까 그 주변에 서 있던 놈 학생이라는 놈들이 전부 다 공범이야. 어쩌면 그 앞에 지렛탄 쏘고 있던 경찰들도 공범일 수도 있어. 기자들은 물론 마찬가지고 그러니까 거기 취재를 했던 방송국 기자 운동국 했던 그 학생들 그다음에 썼던 치레탄 쏘았던 경찰들하고 딱 같은 한 톡 속이야. 단지 이 사람들이 아는 것은 대한민국은 그렇게 여러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면 처벌을 하지 못한다라는 걸 알고 있는 거지. 그렇지만 이 경우에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해. 그 많은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그냥 덮을 수가 있겠어.
앞에서 내가 말했지만 일본의 전략은 호남의 전략일 수도 있어. 호남의 문화를 이어받은 것이 여론이기 때문이지. 문화라는 것은 정책도 혹은 어떤 정치적인 것도 포함이 되지. 그래서 일본이 조선을 먹을 때 사용했던 수법과 지금 이 서울 디지털 대학의 문제가 매우 흡사해. 김대중의 전략이라고 보면은 충분히 모든 것이 연결이 되지숫자로 풀어보는 같은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이야. 이런 것이 계획과 정책 또 다른 말로는 전략과 범죄일 수도 있는 거지. 어차피 이 정책이나 전략이라는 것은 한 끗 차이야. 성공을 하면 정책이 되는 것이고 실패를 하면 범죄가 되는 거지. 수사권을 가져 있는 경찰에서 과연 이 사건을 어떤 관점으로 볼 것이냐라는 문제야. 지금 이 사건에서는 동작동에 김대중 파묘는 베이근 아닌 거야. 그다음 여기서 김대중 정신을 혹은 지금 사람들이 염려하는 그 부분을 지킬 것이냐 말 것이냐라는 부분에 대한 결정을 해야 돼. 나는지금 이 사건에서는 동작동에 김대중 파묘는 베이근 아닌 거야. 그다음 여기서 김대중 정신을 혹은 지금 사람들이 염려하는 그 부분을 지킬 것이냐 말 것이냐라는 부분에 대한 결정을 해야 돼. 나는 여기서 보로금을 요구하는 것이 전부야. 내가 정치를 하거나 이념이나 사상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이면 혹은 아니면 인문학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이면은 내 역할이 있겠지만 나는 지금 이렇게 글을 쓰기 전까지는 내가 한 말이 모두 몇 마디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나는 말을 거의 안 하고 살았어. 특히 정치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그랬지. 나 교수님이나 황 교수님을 만나보면 알겠지만 특히 나 교수님은 내가 내려가기 전에는 한 1년 정도를 거의 매일부터 살았어. 저녁 식사를 같이 하고 새벽 아침까지 매일부터 살았는데. 내가 한 말은 얘 한마디밖에 없어. 그 외에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난 내도 기억이 없을 정도야. 그만큼 나는 말을 많이 안 하고 살았어. 지금은 내가 그만큼 분노를 가지고 있고 억울하니까 이렇게 말이 많은 것뿐이야. 그러니 앞으로 정치적으로 해결할 일들이나 나한테 숨겨놨던 거는 내가 다 털어냈으니까 이젠 너희들끼리 싸우란 말이야. 나를 중간에 끼워 놓고 밀당 같은 거 하지 마라. 이 말이지. Connect : 경찰청 홈페이지, 게시판 ‘윤석열 대통령님을 칭찬합니다. 16, 26, 36, 46, 56, 66’ (대통령 똥 Version 1.0): 김대중 똥 Version 1.1.5, 대통령 똥 Version 1.2.6, 대통령 똥 Version 1.3.6, 대통령 똥 Version 1.4.6, 대통령 똥 Version 1.5.2, 대통령 똥 Version 1.6, 대통령 똥 Version 1.7, 대통령 똥 Version 1.8, Version 1.9, 대통령 똥 Version 1.9.1, 대통령 똥 Version 1.9.2, 대통령 똥 Version 1.9.3, 대통령 똥 Version 1.9.4, 대통령 똥 Version 1.9.5, 대통령 똥 Version 1.9.9.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