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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연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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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과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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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전설과 설화

  • 용마가 낳았다는 전설

    인천시 청학동에 "흔들못"이라는 큰 연못이 있었는데 전설에 의하면, 어느날 그 못에 물이 크게 흔들리면서 못 한가운데서 용 한필이 쑥 솟아 올랐다. 그러자 별안간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와 아울러 하늘에서는 뇌성벽력이 일어났다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 괴이한 광경을 보자 겁이 나서 어쩔줄을 몰랐는데, 더욱 괴이하고 신기한 일은 이 마을의 어느 최씨 집에 마침 아이가 탄생하였다. 그런데 그 아이의 겨드랑 밑에는 날개가 달려 있었다고 한다. 마치 용마의 날개와 비슷했는데 그 아이가 날개를 펼치면 천정에 올라가 붙었다가 다시 내려 앉았다가 했다.
    그러자 그 당시만 해도 힘이 센 장사가 태어나면 나라에서 장차 반란이 날까봐 잡아 죽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부모들은 마음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얼마 후 부모들은 골똘히 생각하던 끝에 그 아이를 눌러 죽여 버렸다 한다. 그러자 괴상한 일이 또 일어났으니 그 흔들못에서 솟아 오른 그 용마가 슬픈 소리로 울어대며 안절부절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잠시 후 그 용마가 마침내 하늘로 날아다니기 시작하였다. 그때 또 다시 뇌성벽력이 일어나자 용마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한다.
  • 중바위

    청학동 사모지고개(현재 문학산과 연경산 사잇길) 동쪽 벼랑에 큰바위가 눈에 띈다. 이 바위를 그곳 주민들은 술이 나오는 바위 또는 중바위라고 부르는데, 이 바위에는 지금도 뚜렷하게 움푹 파인 두 무릎자국과 두 손자국을 볼 수 있다. 옛날 삼호재 넘어 어느 절에 한중이 살고 있었다. 그 중은 매일같이 볼 일이 있어 이 고개를 넘게 되었는데 어느날 이 고개 마루턱에 이르자 몹시 목이 말라 견딜수가 없었다.
    이럴때 술이나 한 잔 마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길가에 있는 바위에서 아름다운 색시가 나타나 중에게 술 한 잔을 공손히 따라 올리는 것이 아닌가. 뜻 밖의 일이라 중은 마침 목도 마르고 해 얼른 그 술잔을 받아 마셨다. 그 술맛이 한결 감칠맛이 나서 한 잔 더 생각이 있었다. 그러자 색시는 또 한잔 술을 따라 주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석 잔을 거푸 권하기에 술을 마시고 나니 그 색시는 그 바위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기이하기에 그 중은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 못할 지경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중은 입으로 중얼거렸다. "아 그 맛좋은 술이나 한잔 마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말이 떨어지자 마자 그 색시가 다시 나타나더니 술 석잔을 따라 주고는 또 그 바윗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은 그 날따라 술 한 잔이 더 마시고 싶었다. 그래서 색시에게 미안하지만 한 잔 더 따라 주실수 없을까요? 하였더니 그 후로는 아무 기척이 없었다.중은 다시 바위에다 외쳐보았으나 색시는 영영 소식이 없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중은 바위를 붙들고 무릎을 대며 이마로 받아 보았으나 색시는 영영 나오지 않았다 한다. 지금도 이 바위에는 손자국과 중이 그때 이마로 받은 자국만이 남아 있는데, 이 바위를 중바위라고 부르고 있다.
  • 먼우금이란지명

    인천 땅 먼우금이라는 곳은 옥련동, 동춘동, 청학동, 연수동을 관할한 면이다. 그래서 아직까지 이 지역 노인들 중에서는 "먼우금"이라 부른다. 먼우금의 한 전설은 옛날 문학면과 남동면 사이에는 갯골이 깊숙이 파고 들어가 만수동 앞까지 뻗치니 걸어서 가려면 10리 이상의 갯골을 돌아가야 하는데 배로 건너면 400~500m에 불과했다. 그래서 멀고도 가깝다 해서 먼우금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또 한 설화는 먼우금이 먼오금으로 이 지역의 산맥이 멀어서 뻗어내려오다 보면 팔이나 다리가 오금처럼 휘어 오그라져서 먼오금이 먼우금으로 변한 것이라고도 한다.
    또 다른 설화로는 먼우금이란 멀고도 가깝다는 뜻으로 옛날 옥련동 능허대에서 사신들이 배를 타고 중국대륙을 떠나던 나루라서 떠날 때에 먼길이나 이곳에 다다르면 갈길은 가깝다는 뜻이라 한다.
  • 중기리 광주 이씨묘지

    옛날 선학동에 중기리라는 고개가 있었는데 전설에 의하면 중근장을 지낸 하중길이란 사람이 먼저 이곳에서 살고 있었다 한다. 그 뒤에 문관집인 광주이씨가 이곳을 살펴보니 지형이 매우 좋은 곳이라 권력으로 이곳을 빼앗고는 그 자리에다 자기들의 조상 묘를 썼다고 전한다. 그러나 그 묘자리가 마치 암꿩의 목덜미에 해당되는 곳이라서 너무나 거창한 돌을 세웠기 때문에 목이 짓눌려 있는 격이 되서 그들의 후손들은 크게 힘을 쓸 수가 없어 번성하지 못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 뜬 돌을 깔았다는 고개

    인천 연수동에서 동춘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논고개라고 부른다. 조선 영조 때 동춘동 일대가 연일정씨들이 살았는데, 그당시 연일정씨 집안에는 정승과 판서, 관찰사, 부사 등 고관들은 말을 타고 고개를 넘어갔다. 위엄을 뽐내기 위하여 고개길 바닥에 얕은 뜬 돌을 깔아서 말이 지나가면 말굽소리가 요란하게 나도록 했다. 그들은 말굽소리로 자기들이 온다는 신호로 이웃마을 사람들이 굽실거리도록 하기 위해 서였다.그렇게 함으로써 마을 사람들은 큰 행차가 온다는 것을 알아 듣고 모두 나와 전송하기로 했다. 그래서 뜬 돌을 깔아 놓고 고개를 논고개라 부르고 있다 한다.
  • 연일정씨 99간 대가

    인천지방에서 제일가는 명산대지는 척전리(동춘동)라 하겠다. 이마을은 인천 명문의 연일정씨의 세거지로 많은 인물이 배출된 곳이라 한다. 특히 정승을 지낸 학남대감 정우량은 경종 3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영조 4년에 부수찬으로 시독관을 겸임하고, 왕에 주청하여 퇴계. 율곡들의 문집을 간행케 했고, 대사성,좌승지, 병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이 되고, 이어 판중추부사에 전임되었다.
    그의 자손들이 대대로 권세와 영예를 누리고 부유하게 살았고 그의 집들은 궁궐같은 집을 지웠는데 특히 구십구간 집이 있다. 옛날에는 궁궐 이외 신하의 집은 백간집을 지을 수가 없어 구십구간을 지었다고 한다. 현재는 헐어 버렸는데 이 집터에는 거목과 한 고가가 있으며 그의 종손이 학남대감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 마리에 전해오는 전설

    현재 연수1동 4단지 서쪽 일부지역을 마리라고 불렀는데 옛날 이곳은 말을 타고 지나가면 말굽이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고 동네가축들이 이름모를 병에 걸려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산신령의 노여움 때문이라 생각하고 큰 감나무 밑에 상돌(제사를 지내기 위해 놓은돌)을 놓고 산제를 지내게 되었는데 해마다 감나무에는 많은 감이 주렁주렁 열렸지만 열린 감중 한개가 사람이 먹으면 죽어버린다고 하여 감을 따지 않았다 한다.
    어느날 석공이 제를 지내는 것은 미신이라 하여 상돌을 깨뜨려버렸다. 그로부터 얼마후 석공의 아내는 바다로 조개를 캐러 갔다가 물에 빠져 죽고 딸은 비가 많이 오는날 고개를 넘다가 불어난 물에 휩쓸려 죽었으며 석공은 병에 걸려 시름 시름 앓다가 죽었다 한다. 지금 이곳은 택지개발로 인하여 주택단지로 변해 있으며 지금까지도 매년 음력 4월 15일이면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산쪽에서 매년 산제를 지내고 있다.
  • 부자 이재익의 죽음

    인천땅 연수동에서 출생한 이재익는 조선 철종때의 인물로 인천에서 손 꼽히는 부자였다. 그에게는 아주 가깝게 지내는 벼슬아치가 한 명 있었는데 서로 왕래가 잦았고 친분이 두터웠다.
    어느날 그 벼슬아치는 이재익에게 제주 목사가 되려고 힘을 쓰고 있는데 돈이 부족하니 돈을 좀 꾸어달라고 하였다.이재익은 그의 요청을 즉각 승낙하고 돈을 대주었고 그는 그 돈으로 윗사람을 교제하여 제주 목사가 되어 부임하였다.
    1년 후에 제주목사로부터 돈을 갚겠다는 연락이 와서 이재익은 수행원을 한 명 데리고 제주도로 떠났다. 이재익은 제주도에 도착하여 제주 목사로부터 원금과 이자를 함께 받아 그 돈을 자기 배에 싣고 떠나려 할 때 수행원을 찾았으나 간 곳이 없고 낯선 남자 두 세명이 타고 있었다. 이재익은 이상하여 그들에게 무엇하는 사람이냐고 묻자 사또의 심부름으로 육지에 가는 중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는 좀 의심이 갔으나 그 돈만 잘 보관하고 배를 출발시켰다. 그 배는 해숙도 부근까지는 다른 배와 같이 갔는데 그 후에는 행방이 묘연해졌다. 제주 목사가 돈을 갚고 나서 사람을 시켜 돈을 뺏고 이재익은 돈도 잃고 목숨까지 잃었던 것이다. 그의 자손들이 제주도에 가서 목사에게 따졌지만 그 목사는 자기가 꾸었던 돈에 이자까지 합쳐서 갚았으며 배까지 호송하여 보냈으니 그 후의 일은 전혀 모른다고 시치미를 뗐다.
  • 전설과 설화(http://www.yeonsu.go.kr/main/yeonsu/intro/legend.asp) 바로가기 QR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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